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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본문

합의된 공감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레니에 2016. 3. 21. 10:59




봄은 마치 아는 듯, 아주 필요한 순간에 온다.

그래서 봄 마중은 설렌다.


스르르 잠들 듯한 포근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왠지 호사 같은 봄,

이 봄에는 칙칙한 겨울옷의 무게를 덜어내듯 밝고 경쾌한 이야기만 골라 듣거나 보고 싶다.


좋아하는 배우인 '다이안 키튼' 때문에 보게 된 영화에도 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기분 좋은 산책쯤이었으면 했다.




시작은 계단 때문이다.

노부부가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5층에 거주한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부담이기에

40년을 살아온 집을 매물로 내놓으며 겪는 에피소드가 전부이지만,

그 과정을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왜곡됨이나 과장 없이

나긋나긋하게 풀어낸 방식이 마치 <위크엔드 인 파리> 보는 것처럼 편안했다.












세상에는 계단이나 생물학적 노화처럼 여러 장애물이 있다. 

하지만 내 편이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립감만큼 곤란한 장애물은 없을지 모른다.


노부부에게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현실은 점점 버거운 길일 테지만

그 계단을 함께 오르내릴 내 편이 없다는 사실만큼 어려운 길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엘리베이터가 인생에서 다른 수단으로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면

유일한 내 편이란,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목적이니까.


모건 프리먼이 착잡해 했던 이유도

자기 방의 막힘 없는 조망을 포기하는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 자기 삶의 전망이 곧 닫힐 것임을 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본 후에 우리가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는 맞은편'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것은 창가에서 마주 보는 세상의 조망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다.


노부부가 흑인과의 결혼을 반대한 사회적 편견의 맞은편에서 함께 했던 것처럼,

화려한 맨해튼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모습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세상의 화려함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편협함이 아니라

평정심을 유지한 채, 세상의 맞은편에서 자기만의 즐거움을 당당하게 선택하는 

성숙함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태도만이 세상의 유일한 정답이라고 결론짓는다면 그들의 선택은 비합리적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경제적인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 해도,

자기만의 각별한 가치에 더 의미를 두고 기쁨과 만족을 얻는 가치 지향적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의 크고 작은 노력이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에게 머물렀는지를,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전망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에 있다.


남편이 그린 아내의 그림처럼,

우리는 매일매일 사랑하는 대상을 예술품으로 창조하며 살아가는 예술가다.

그 작품을 평가할 권리는 세상이 아닌 그 자신에게만 있다.


예컨대, 경박한 방식으로 남편의 작품을 대하는 이들에게서 단호하게 남편의 방식을 옹호하고

남편 또한 섬세한 마음 씀으로 부인의 사소한 감정을 소홀히 하지 않는 태도에 있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의 삶의 무대는 세상의 중심이 아닌 그 맞은편이다.

경험 부족으로 한계는 있지만 노년의 세계도 분명 세상의 맞은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맞은편에서 세상의 즐거움과는 상관없는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어떤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킨 것은 40년 동안 충분히 봐 온 외부 조망권이 아니라,

40년 동안 익숙해진 서로와 추억을 다시 한 번 눈여겨볼 수 있는 권리일 것이다.


결국, 삶에서 가장 크게 이끌리는 조망은 사람이다.

집이 물리적 공간이라면 사람은 사람에게 필요한 심리적 공간이다.


그 사람과 함께 공유한 장소와 정신의 특별한 가치,

그것을 어찌 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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