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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환상의 빛- 고레에다 히로카즈 본문

합의된 공감

환상의 빛- 고레에다 히로카즈

레니에 2017. 7. 29. 07:59







화면이 어두웠다.

마치 새카맣게 타 숯덩이가 된 마음 같았다.


주인공이 영화를 시끄럽게 하지도 않았다.

입만 열면 나올 소리가 상당히 절제됐다.

그 대신에, 대사보다 더 명확하게 들려오는 건 주변의 소리였다.


파도와 바람 소리, 옆방에서 들려오는 벽간 소음과 일상의 이런저런 소음들이 의도적으로 증폭되었다.


그것은 소음이 아니라 삶의 육성이었다.


그 소리 때문에 영화는 불쾌한 관념이 아니라 차분한 현실이 된다.

잘 연출한 미장센이 유미주의나 형식주의로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별난 서사 없이 시종일관 차분하게 진행되는 영화가 공허해지지 않는 까닭도 

그 생동하는 육성의 자리매김에 있었다.


아울러 돋보인 건 뭐든 하나로 묶는 단단한 끈을 사용해

슬픔을 서둘러 진압하려 하지 않는 감독의 진중함이었다.














▲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나직한 다다미 쇼트를 보는 듯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도 닮았다.


이 특별함이 특별한 건 아니다.

우리가 무심결에 보고 지나치는 일상의 부스러기다. 










▼ 소모적으로 흘러가는 게 너무 아까워 글 한 줄이라도 쓰고 싶은 장면이 많았다.

한 가지만, 딱 한 가지만.




모든 영화는 머뭇거림 없이 끝을 향해 걷는다.

그것은 유일한 길이다.














저마다의 인생에는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는 비공식적 통로가 존재한다.


그 좁은길에서 누군가는 입을 다물고 

또 누군가는 잠을 뒤척이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













우리에게는 타인의 감춰진 슬픔의 깊이를 가늠할 능력이 조금도 없다.

사람은 저마다 그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자명함이 수시로 서늘하지만

그것을 어떻게든 견뎌낸 결과가 지금의 자신이다.







'키키 키린'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이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근작들은 구체적이었다.

홍상수 감독이 삶의 위선을 제 형상대로 찍어내듯 그 또한 일상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그 변주도 복잡하게 유쾌하지만, 첫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도 

사랑하는 이에게 진지하게 쓴 편지를 읽는 듯한

따스함을 느꼈다.


언제나 그렇듯,

이 세계의 자디잔 것들의 안색을 살피는 감독의 태도가 곡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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