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구시렁#577 [동어반복] 본문
김 서린 욕실 거울을 손으로 닦을 때 드러나는 내 얼굴을 향해 말한 적이 있다.
"너도 이제 고3이다."
"너도 이제 서른이다."
"너도 이제 마흔이다."
내가 웃어야 웃고
내가 물어야 물으며
단 한 번도 아니라고 먼저 말하지 못하는 거울을 보며
어제도 한 생애를 지지부진한 남자가 거울 속 사내에게 말했다.
"너도 이제 호시절은 다 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인간에게는
백설 공주에 등장하는 마녀의 거울처럼 결국 사람은 착각의 크기만큼만 행복하고
그 행복이란 타협의 산물이라는 해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아직은 괜찮다'라는 착각이 나를 추연히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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