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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손석희와 이국종, 닮은꼴 인터뷰 본문

잡담 or 한담

손석희와 이국종, 닮은꼴 인터뷰

레니에 2017. 11. 23. 13:59

1.

의사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 응급 헬기 안은 아닐 것이다.

피와 변을 보고 만지는 수술실도 아님은 외과 기피 현상에서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군인에게 가장 안전한 곳도 적에게 노출되는 야전이 아님을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

 

 

 

 

2.

북에서 한 남자가 선을 넘어왔다.

상황에 따라 진보이거나 보수인 나는 늘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데,

어떤 이가 넘고자 하는 선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선이었다.

 

일부 정치인들이 그를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정쟁의 도구로 활용할 때

혼자 힘으로는 살 수 없는 그를 살리기 위해 군인들과 의료진의

앞뒤 가리지 않는 고투가 있었다.

 

 

 

 

 

 

 

 

 

3.

줄을 잘 서야 하는 건 한국사회의 금과옥조다.

주류 사회가 받아들일 경로를 밟지 않으면 인생이 순탄치 못하다.

거칠게 말하면 쪽수가 많은 쪽,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수 편에 서는 건

한국인의 현실적 행동 양식이다. 

 

두 사람은 그와 반대다.

손석희 앵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환기하고

이국종 교수는 흔히 말하는 돈 안 되는 일에 헌신한다.

 

 

 

 

4.

명문대 출신이 아닌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속한 세계인

의학계와 언론계의 주류로부터 견제되고 왜곡되며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들은 주류 집단에서 '정상'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와 자신의 행위가 일시적인 임시방편 아님을 시간을 통해 증명했다.

옳은 일을 편애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은꼴이다.

 

최근에 이국종 교수가 오해받는 상황이 안타까웠던지

손석희 앵커는 어제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동원해 그를 극진히 변호했다.

 

'앵커 브리핑' 코너로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아예 장시간 화상 인터뷰까지 방송했는데

그 정도면 손석희 앵커의 마음씀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5.

그동안 집요하게 이국종 교수를 괴롭힌 의학계 내부의 날 선 폭력과

최근 가해진 일부 비판에 그는 매우 지쳐 보였고 손석희 앵커는 미리 준비한 듯 예리함을 내려놓았다.

그는 질문에서 한발 물러섰다.

질문 두어 개는 평소 그 답지 않아 생경했고 오히려 이국종 교수의 답변이 우문에 현답이었다.

그는 모름지기 의사는 자신과 같아야 한다고 규정되는 걸 단호히 거부했다.

 

 

 

 

6.

북한 병사의 의료정보 유출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느닷없이 '인권'이라는 잣대를 들이댄 진영은 그 문제 제기가 정치공학적 셈법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답할 수 있을까.

기생충으로 체제 우월성을 홍보하려던 쪽에서는 모두의 이익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부끄러움 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인권의 고귀함을 모르지 않아도 인권만을 말하기엔 사회는 너무도 복잡한 형태로 진화했다.

인권이란 잣대를 기계적으로 들이대는 순간 정작 그 인권이 다른 인간에게는 흉기가 된다.

우리가 질문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인권을 무기처럼 손에 쥐고

특정한 경우에만 인권을 말하고, 인권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한다는 사실이다.

 

 

 

 

7.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인권이 중요하다면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사각지대에 놓인 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사회복지사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마땅한다.

북한 병사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중증 센터 의료진의 희생과 그들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한다.

 

공정과 정의를 애용하다가도 자신이 아플 때는

보다 수준 높은 질병 치료를 위해 암암리에 여기저기 줄을 대고

응급을 앞세워 수술 스케줄을 조정하는 일이 다반사인 우리 의료 현실에서 

인권이나 지위, 치료비를 묻지 않고 그저 몸과 마음이 찢기고 곪은 상처를 치료해주는 의사나

의료 환경 구축도 당면한 급선무다.

 

응급센터에서 혹사당하는 의료진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전무한 현실과

의료계 내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누군가는 집도해야 하는데

인권 논쟁으로 교각살우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삶이라는 현장에서 누구도 완벽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피 튀기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8.

나는 사안에 따라 변덕이 죽 끓는 듯하고 손 앵커와 이 교수 두 사람에게도 오류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중간에서 머뭇대지 않고 화끈하게 그들 편을 들겠다.

 

어쨌든 세상은 '나 홀로 잘 살겠다'가 아니라 '나 홀로라도 공공성과 규칙을 지키겠다'는 

사람들 덕에 사회의 질적 변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전한 난제 속에서도 사람들이 희망의 실마리를 붙들고 있는 것도,

문제가 너무 많은 사회가 그나마 굴러가는 것도

유불리를 따지지 않은 채 문제를 회피하지 않은 사람들 덕분이다.

 

내 비록 능력 없고 줏대 없는 속물이지만

그 정도의 부채감과 윤리적 사고력을 지니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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