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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토지> 인실의 말 본문

합의된 공감

<토지> 인실의 말

레니에 2018. 4. 21. 12:59

 

 

"신비와 현실적인 두 관념을 수용한 것에 한(恨)이란 말이 있습니다.

일본 말로는 한을 원한으로 쓰고 그것은 복수라는 묘하게 엽기적인 분위기를 갖는데

우리가 말하는 한에는 거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어요.

 

한이 된다, 한이 맺혔다, 할 때는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빼앗겼든 당초 주어지지 않았든지 간에 결핍을 뜻하고,

한을 풀었다, 할 때는 채워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해서 결핍은 존재할 수 없는 방향으로, 채워졌음은 존재하는 방향으로, 

그렇다면 그것은 생명 자체에 관한 거예요.

 

한은 생명과 더불어 왔다 할 수 있겠어요.

한의 근원은 생명에 있다 할 수도 있겠어요.

 

흔히 지옥이다 극락이다 하는 말을 쓰는데 하나는 공포의 상태,

하나는 안락의 상태, 그것은 정지된 상태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극락이나 지옥보다 실감 있게 쓰이는 말이 내세(來世)와 차생(次生)이에요.

이어짐으로써 시간 위에 서 있음으로 해서 생명은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한은 내세에까지 하나의 희구 소망으로써 조선사람들 가슴에 있고,

때문에 현실주의와 신비주의는 조선사람에게 융화된 사상이란 거예요.

황당하지도 합리적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

 

 

조선의 예술과 문화는 광활하고 강력하고 정교하진 않을 거예요.

생략하고 절제하는 것을 느끼는데, 그걸 국토가 작아 조촐하다고들 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서 석굴암의 불상을 본다면 국토가 크고 작음은 무의미한 것이니까요.

사실 생략하고 절제했다는 것도 무의식의 결과 아닐까요?

자연에의 접근 혹은 동화, 그건 생명에의 지향일 것입니다.

강력이 아닌 균형의 생명의 힘 그 자체로 생각합니다.

 

중국의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란 표현과 오이씨 같은 버선발이란 조선의 표현에서도 우리는 느끼지요.

삼천장이란 거대한 것에서 강력함의 허실을 볼 수 있고

오이씨 같다는 작은 것에서 생동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다릅니다. 전혀 다르지요. 다른 문화예요.

 

 

(…)

 

 

조선에서 얻어가고 빼앗아가고 끝없이 가져가도 빈곤한 바탕에서 생략할 수밖에 없는 일본의 치졸한 단순성,

풍요한 바탕에서의 생략과는 무서운 거리지요.

제 말이 틀렸나요?"

 

 

<토지 4부 2권 중>

 

 

 

 

 

 

 

 

조선백자는 채우지 않았다.

고려 청자처럼 조형미를 과시하거나

도안을 그려 그림옷을 입으려는 욕심을 포기했다.

 

맑은 살갗과 단정한 태도를 지닌 조선백자는

중국이나 일본 자기처럼 인위적인 화려함이 없다.

복사꽃 같고 젖빛 닮은 어리숭한 얼굴로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띠며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정취를 은근히 발산할 뿐.

 

 

지금 인실은 사학을 전공한 오가타에게 일본의 문화와 정신적 빈곤을 지적한다.

다소 거친 표현으로 상대가 모욕을 느낄만큼의 감정을 드러낸다.

 

오가타의 사랑에 호응할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인생도 이 땅 곳곳에 스며 있는 한과 

조선의 문화처럼 생략과 절제의 경로를 밟을 것임을 예고한다.

 

그녀는 오가타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한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결국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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