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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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된 공감

<토지> 김환(구천이)의 말

레니에 2018. 4. 26. 13:59

 

"부처는 대자대비(大慈大悲)라 하였고 예수는 사랑이라 하였고 공자는 인(仁)이라 했느니라.

세 가지 중에는 대자대비가 으뜸이라.

큰 슬픔 없이 사랑도 인도 자비도 있을 수 있겠느냐?

 

어찌하여 대자대비라 하였는고.

공(空)이요 무(無)이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마음으로 육신으로 진실로 빈 자이니 쉬어갈 고개가 

대자요 사랑이요 인이라.

쉬어갈 고개도 없는 저 안일지옥의 무리들이 어찌하여 사람이며 생명이겠는가."

 

 

 

(…)

 

 

 

고달픈 육신을 탓하지 마라.

고통의 무거운 짐을 벗으려 하지 마라.

 

우리가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만나게 된다면 우리 몸이 유리알같이 맑아졌을 때일까.

그 만남의 일순이 영원일까.

 

강쇠야 그것은 나도 모르겠네……. "

 

 

 

 

"한이야 후회하든 아니하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르는 곳에서 생명과 더불어, 내가 모르는 곳, 

사람 모두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온 생명의 응어리다. 

밀쳐도 싸워도 끌어 안고 울어도, 생명과 함께 어디서 그것이 왔을꼬? 

 

배고파서 외롭고 헐벗어서 외롭고 억울하여 외롭고 병들어서 외롭고 늙어서 외롭고

이별하여 외롭고 혼자 떠나는 황천길이 외롭고 

죽어서 어디로 가며 저 무수한 밤하늘이 별같이 혼자 떠도는 영혼,

그게 다 한이지 뭐겠나. 참으로 생사가 모두 한이로다."

 

 

<토지 5부 1권 중>

 

 

 

 

 

 

강쇠가 김환과의 대화를 회상한다.

 

김환(구천이)은 '토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다.

환영받지 못한 출생의 비밀, 명료한 고독, 불같은 사랑과 함께

 세상의 편견과 허위같은 몽둥이마저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리얼리스트이자

생모와의 첫 만남에서 윤씨부인이 지긋한 눈길로 어미로서의 직관을 보낼 때 

그 모성본능과 모성결핍의 대결을 흔들림 없이 받아내고 견디던 침착한 사내였다.

 

그가 이제 영원히 자유로워지기 위해 준비한다.

 

 

김환이 생모와 분리되고 친부를 처참하게 잃은 일.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던 그와 별당아씨를 가로막던 일.

신분으로, 경직된 흑백 논리로 편을 가르던 세상의 일.

 

그는 이제 더는 쫓지도 쫓기지도 않으려 한다.

 

 

 

 

 

어느 곳이든 영사기 불빛같은 빛이 틈새로 스며들면 전에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드러난다.

밝거나 어두울 땐 실체가 드러나지 않던 쓸쓸한 부유.

우주에 달과 지구와 태양이 먼지처럼 떠 있듯

함부로 혼자 떠돌다 다만 명멸하는 그 허망한 몸짓들.

 

그런데, 인생에 고독마저 없다면, 살아온 만큼의 외로움마저 없다면

대체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왜들 외롭지 않으려 그리도 노력하는지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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