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토지> 서희의 눈물 본문
서희는 흐느껴 울었다.
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았으나 흐르는 눈물은 멎지 않았다.
그가 앉은 별당, 어머니 별당아씨가 거처하던 곳,
비로소 서희는 어머니와 구천이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어머니는 불행한 여인이었던가,
나는 행복한 여인인가 서희는 자문한다.
어쨌거나 별당아씨는 사랑을 성취했다.
불행했지만 사랑을 성취했다.
구천이도, 자신에게는 배다른 숙부였지만 벼랑 끝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살다가 간 사람,
서희는 또다시 흐느껴 운다.
일생 동안 거의 흘리지 않았던 눈물의 둑이 터진 것처럼.
<토지 16권 중>
박효영의 자살 소식을 들은 서희는 연신 눈물을 흘린다.
서희도 박 의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희는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
좋아도 좋은 티를 내지 않았고 싫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웃을 일과 울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서희에게도 희로애락이 악착같이 따라다녔다.
최참판가를 재건하는 자신의 오랜 꿈은 이루어졌지만 그 꿈에 쫓긴 서희가
박효영의 죽음을 계기로 고백하듯 감정을 드러낸다.
자신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 생모와 구천이.
치욕으로 느꼈던 그 사랑을 중년의 서희가 이해하며 그들과 화해하고
삶에는 시간이 가르쳐주는 것도 있음을 깨닫는다.
<비포 시리즈>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만든 영화 『보이후드』에서
중년의 엄마는 대학생이 되어 떠나는 아들 메이슨 앞에서 울며 토로한다.
"결국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거야.
결혼하고 애 낳고 이혼하면서.
이제 뭐가 남았는지 알아? 내 장례식뿐이야!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최치수의 정신적 학대와 좁은 별당만이,
이사부댁 여인들처럼 명분만이,
그저 그것만이 전부였다면 인간에게 그것은 모욕이고 억압이며 고통이다.
세상의 눈이 두려워 주눅들고 자신을 기만한다면 그 역시 불행이다.
하고많은 결핍 중에는 사랑의 부재도 포함된다.
김환과 별당아씨처럼 사랑의 가치를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면 안 된다고? 왜? Why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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