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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마른 꽃 - 박완서 본문

합의된 공감

마른 꽃 - 박완서

레니에 2018. 8. 6. 09:59

 

 

 

 

"지금 조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 감정은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나는 그와 그럴듯한 겉멋을 부려본 데 지나지 않았나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히 모든 것이 보였다."

 

<박완서 단편 '마른 꽃' 중에서>

 

 

 

 

 

 

1.

삶에는 마치 축 늘어난 뱃살이나 툭 불거지는 옆구리 살처럼 비공개로 닫아두는 부분이 있다.

남에게 들킬세라 쉬쉬하며 겉옷과 보정 속옷으로 

단점과 허물을 깜쪽같이 감추지만, 잠시라도 방심하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군살과 튼 살들.

그런데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 속살이 어쩌면 인간의, 인간적인 몸이라고 여겨진다.

 

 

2.

잘 차려입은 모습과 화장한 표정에 지나치게 익숙한 어느 날 실재의 모습을 대하면 굉장히 낯설다.

다 벗은 자기 몸을 거울 앞에서 흐뭇이 바라보는 중년과 노년은 과연 얼마나 될까.

훗날 거울 앞에 발가벗고 섰을 때 그 거울에서 반사되는 따끔한 진실을 나는 견딜 수 있을까.

 

 

3.

거울에는 단지 자신의 노화만이 아니라 자기가 놓친 기회와 오류가 투명하게 빛날 것이다.

사람이 어떤 명함과 명품과 명예를 가졌든 그런 것들이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는 

자기애를 동원해 애도할 수는 있어도 거드름을 피울 수는 없을 것 같다.

 

 

 

 

 

 

 

 

 

 

4.

박완서 작가의 단편 <마른 꽃>은 노년의 사랑을 그리면서 또한 인간의 속을 빤히 들여다본다.

작가는 소설 주인공 뿐만 아니라 그녀의 딸과 상대남 며느리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하며 

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를 생동감 있게 드러낸다.

 

우아한 꽃이 되어 산문의 형식으로 일상에 안주할 것인가,

시의 형식으로 짧게나마 불같이 타오를 것인가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나의 대답 역시 등장인물들처럼 상황과 시기에 따라 달라지고,

서로 다른 개개인의 집합인 세상 또한 겉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복잡하다.

다만 나는 이왕이면 내 인생의 결말이 떠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는 해피엔드였으면 한다.

 

 

5.

이제 겨우 환갑을 맞이한 여자도 소멸하는 자신의 몸을 따라 소멸하기로 마음먹는다.

여자는 자기 안에서 은밀하게 진행하는 욕망을 확실하게 알아보지만,

그 신선한 에너지도 생활이 압축된 민낯이 고스란히 보일 때는 속절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지레 겁을 먹은 노년에게 남는 것은 더 나이 든 노년뿐이라서

나는 소설의 결말과는 다르게 나이에 구애됨이 없이 노년에도 절묘한 순간을 만들고 싶다.

 

 

6.

오래전에 날아간 뻐꾹새가 마음 깊은 곳에서 운다.

어느 때는 그것만이 전부인 것 같다가도 어느 때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변덕 속에 주인공과 내가 있다.

 

역시나 인생에서 가장 난해한 건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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