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역모 - 전병석 본문
역모 / 전병석
내일이면
엄마는 퇴원한다
형제들이 모였다
엄마를 누가 모실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큰형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요양원에 모시자
밀랍처럼 마음들이 녹는다
그렇게 모의하고 있을 때
병원에 있던 작은 형수
전화가 숨 넘어간다
어머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고 있다며......
퇴원 후를 걱정하던 바로 그 밤
자식들 역모를 눈치챘을까
서둘러 당신은
하늘길 떠나셨다
전병석 시집 『그때는 당신이 계셨고 지금은 내가 있습니다』중 <역모> 전문
시인은 어렵게 말하지 않는데
너무 빤한 우리 속내가 무참히 드러난다.
내 부끄러움도 시 속에서 또렷하다.
진실은 이렇듯 쉽게 표현될 수 있다.
사실, 자식을 키우는 자식들은 이미 구차한 변명을 여럿 마련해 놓았다.
우리는 우리가 낳은 자식 없이는 살 수 없어도 늙고 병든 엄마 없이는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다.
사는 동안 그러했듯이
엄마는 자식들의 짐이 덜어지는 일이라면 뭐든 하셨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죽음이어도 엄마는 그 절망마저 자식을 끌어안듯 보듬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만장일치 역적모의를 하지 않더라도,
나를 낳아 길러준 여자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해왔던 방식 그대로 어디든 갔을 것이다.
'합의된 공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금이 절창이다 - 문인수 (0) | 2018.08.26 |
---|---|
바퀴 - 문인수 (0) | 2018.08.25 |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0) | 2018.08.10 |
마른 꽃 - 박완서 (0) | 2018.08.06 |
포옹, 그것은 삶에 대한 밀착 - 오 루시! (0) | 2018.07.05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