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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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or 한담

엄마와 아들

레니에 2018. 8. 22. 19:59


예전에 이산가족 상봉 관련 방송과 사진을 보면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방송과 기사가 감동을 강요하며 호들갑을 떨어도 나는 당사가가 아니어서 다만 안타까울 뿐이었어요.


이산가족 상봉을 다루는 매체는 항상 남측이 북측에 훨씬 좋은 선물을 하는 뉘앙스로 끝을 맺었습니다.

북측도 마치 자기들이 대단한 선심이라도 쓰는 양 했지요.

나는 그런 일이 믿기지도, 이해되지도 않았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를 먹어서인지

어제 이 사진을 보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설명문 없이도 그들의 마음고생이 와닿았습니다.











엄마(92)와 아들(71)은 이미 충분히 늙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이고 아들입니다.

그보다 명징하고 중요한 사실이 또 어딨겠습니까.











'아들'과 '엄마'라는 단어의 발음은 무심히 부드럽습니다.


경쾌하게 반짝거리며 발음되는 '딸'과 '아빠'에 비해 울림이 좋지요.


엄마와 아들이 함께 살지는 않더라도 전화라도 하면서 엄마와 아들로 살다가 죽는 일이 이토록 어렵군요.

우리 현실은 사실 이렇듯 무서운 조건에 놓여있습니다.











사람이 앞일은 모른다지만

모자간에 오래 살 기색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노인이 된 엄마와 아들의 상시 상면은커녕

일회성 만남조차도 더는 기약이 없지요.


제자리로 돌아간 모자는 남쪽과 북쪽에서 각자 홀로 멍하니 앉아 불과 몇 시간짜리 추억을 만지작거리며 남은 생을 살겠지요.

세상은 헤어짐의 불가피성을 말할 뿐, 만남의 불가피성에 대해서는 침묵할 테고요.

얻거나 빼앗는 데에만 익숙한 세상은 이런 상봉조차도 물물교환처럼 하라고 또 강요할 겁니다.


충분히 불우한 자에게 앞으로도 꾹 참으며 더 불행하게 살라고 강요하는 현실.

억누를 수 없는 본능을 참고 견뎌야 하는 게 고작인 생.

나는 그 이데올로기가 질립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마저 간단히 몰수해버리는 이념이라는 밑줄이

우리 삶에는 남자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만큼이나 깊습니다.


네 살 아이 때처럼, '엄마'라는 최초의 언어를 또다시 잃는 늙은 남자가 무슨 말을 할까요.


남자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다만 저 외로운 몸뚱이는 남들은 모르는 어딘가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후드득 흘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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