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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만금이 절창이다 - 문인수 본문

합의된 공감

만금이 절창이다 - 문인수

레니에 2018. 8. 26. 20:59

 

 

만금이 절창이다 / 문인수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

물밀며 걸어 들어간 자국 따라 무겁게 되밀려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길, 그리 길지 않지만

지상에서 가장 긴 무척추동물 배밀이 같기도 하다. 등짐이 박아 넣은 것인지,

뻘이 빨아들이는 것인지 정강이까지 빠지는 침묵. 개펄은 무슨 엄숙한 식장 같다. 어디서 저런,

삶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을 보랴, 여인네들…… 여남은 명 누더기누더기 다가온다. 흑백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 없다. 최후처럼 쿵,

트럭 옆 땅바닥에다 조갯짐 망태를 부린다. 내동댕이치듯 벗어놓으며 저 할머니, 정색이다.

"죽는 거시 낫겄어야, 정말로"

늙은 연명이 뱉은 절창이구나, 질펀하게 번지는 만금이다.

 

 

문인수 시집 『배꼽』중 <만금이 절창이다> 전문

 

 

 

 

죽음에 가까울 때 더욱 갸륵한 생

 

밭일을 하며 부르는 노래는 있어도 갯일을 하며 부르는 노래는 없다 한다.

흔한 수다도 없다.

맨땅이 아닌 뻘을 밟으며, 푹푹 빠지는 그 진창에 온몸으로 엉겨붙는 일은 

밀물에 밀려 쫒기듯 뭍으로 나올때까지 입 열 힘조차 전속력을 내는 데 다 쏟아붓는 고역인 탓이다.

 

 

그 뻘밭에서 수십 년 습작한 끝에 비로소 득음한 여자가 부른다, "죽는 거시 낫겄어야, 정말로."

 

온종일 꼭꼭 감춘 속내를 엄살로 바꿔 딱 한 번 뱉어놓고, 더 긴 말은 나올 리 없는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돌아가 늙은 몸뚱이에 밥 한 그릇 떠넣어 주고 다시 물때를 오도카니 기다릴 생.

바다에 나가 얻어온 조갯짐을 부려놓을 때마다 사는 일의 고단함이 그 일정량만큼이라도 덜어졌을까.

 

 

두서없는 세상사야 종잡을 수 없지만 하루 두 번 물때는 어김이 없다.

그 사실이 무슨 생의 깨소금이라고 

평지를 가도 숨이 차고 휘청거릴 나이의 노인이 믿는 건 그것뿐이다.

 

그만두고 싶어 죽겠는 일을 죽을힘을 다해 다시 해야 하는 서글픔을 한 인간은 평생 얼마나 자주 느낄까.

 

"바다야, 네 덕분에 살았다만 죽어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고 싶은 때가 간혹 있다.

그러나 죽음에 가까울수록 애물단지 같던 생은 또 얼마나 갸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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