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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 본문

합의된 공감

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

레니에 2018. 9. 13. 08:59

 

 

 

 

 

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절름발이 학수 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문태준 시집 『맨발』중 <비가 오려 할 때> 전문

 

 

 

 

 

하나둘 싹을 내밀던 보리가 제 모습을 얼추 갖추며 나날이 여문다.

청보리밭 살펴 가는 바람은 아마 마파람일 것이다.

그때의 곡식은 그 바람에 든 습기를 먹고 큰다.

 

같이 사는 짐승도 식구다.

비가 온다고 사람이 그들을 챙긴다.

 

사람의 고민은 한쪽으로만 치우친다.

성치않은 제 몸이 먼저 심란할 사람이 비스듬하게 지나간다.

농사는 돌보기의 시작인데, 그가 거름을 챙겨 땅을 돌보아준다.

그 품값을 내가 얻어먹는다 생각하면 하찮은 열무김치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당신이 날씨처럼 궁금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그런 거 없이도 그럭저럭 잘 살았다. 

 

사람을 미워하는 일에도 힘이 필요하다.

삶이 분해서 씩씩거리는 일도 에너지를 요구한다.

나는 이제 힘이 없다.

 

 

그녀와 청보리, 이끌려 돌아오는 까만 염소, 절름발이 학수 형님과 열무밭.

 

산목숨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때로는 이런 게 인생이어서 말문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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