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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서로를 향해 열린 틈새 <인 디 아일> 본문

합의된 공감

서로를 향해 열린 틈새 <인 디 아일>

레니에 2019. 2. 26. 20:59

 

 

 

이것은 소소한 이야기다.

히어로나 판타지가 부재한 서사로 일정 수준의 관심을 끌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임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다.

그리고 우아하다.

 

'리듬(rhythm)'은 '흐른다' '움직인다'는 뜻의 동사 'rhein'을 어원으로 하는 그리스어 'rhythmos'에서 유래했다

 

오프닝 시퀀스에 왈츠를 추듯 화면을 우아하게 가로지르는 지게차가 등장한다.

그때 흐르는 배경음악은 요한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그 리듬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출근, 근무, 퇴근 등 모든 것이 기표가 된 세상에서

블루칼라 계층이 좀체 맛보기 힘든 형식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건물은 사람이 쇼핑에만 전념하도록 애초에 창문을 설계하지 않는다.

그곳의 제품과 드나드는 인원은 다양한데 의외로 본질은 단순하다. 

사실 대형마트는 경제 효율 총합이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때 유지되는 차갑고 계산적인 공간이다.

 

 

영화의 무대인 대형마트엔 사람에게 필요한 제품이 거의 다 있다.

소비자가 찾기 쉽도록 카테고리를 분류하고 구획했다.

 

공급은 수요만 있다면 무제한.

브루노의 공백이 그러하듯 빈칸은 팔리기 무섭게 채워진다.

 

안 팔리면 1+1을 하거나

능란한 판촉 기술로 막판 떨이를 한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속절없이 폐기하니까 타자에게 자기를 적극 노출해 유통해야 한다.

 

거울 앞에서 복장을 점검하는 '크리스티안'처럼 외부가 우리에게 강요한 규율의 수행에 우리는 익숙해진 바 있다.

난마처럼 얽힌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 항상 말끔하게 정리되고 

"00제품 어디에 있나요?"라는 우리의 물음에 즉시 반응하는 공간. 

어쩌면 대형마트는 우리가 살면서 선호하는 구조를 압축한 장소이다.

 

 

 

 

 

 

 

 

 

 

주인공은 지게차 운전을 배우며 삶 전반에 흐르는 하중의 배분, 

상호인정의 규칙과 질서, 인간관계에 내포한 셈과 여림의 조절법을 배운다.

 

우리는 비록 최상급 연주자가 아니지만,

최소한 그 리듬에 기대어 삶이라는 무대에서의 '초연'을 어설프게나마 끝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야자나무 그림은 꿈꾸던 꿈에서 유리된 이들이 잠시 쉬는 공간에 걸려 있다.

이면과 내면의 가시화.

눈앞의 생활세계와는 전혀 다른 배경이다.

 

명백하게 더 나빠질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판단한 부르노가 스스로를 격리하듯 사는 일의 부조화가 선명하다.

.

 

 

 

 

 
 

 

 

누군가는 불을 끄고 누군가는 불을 켜는 밤.

그들의 전망이 어둡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가 살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인생의 통과의례인지 모른다.

 

 

 

 

 

 

 

마리안과 크리스티안이 냉동창고에서 에스키모식 인사를 하듯이,

 삶이라는 극지에도 냉기를 무화하는 체온을 지닌 인간이 있다.

 

감독은 클래식과 블루스록을 적재적소에 사용한다.

모두의 인생에 공공연히 결부된 희로애락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화면은 음악과 함께 적잖은 반향을 남긴다.

 

 

영화는 무겁거나, 지나치게 가볍거나, 투박하거나, 거칠거나, 무례하거나 진부하지 않다.

지나친 비관이나 실없는 낙관, 놀라운 반전도 없다.

보잘것없는 이야기가 서둘러 시원한 결론에 이르지도,

쉽게 휘발하거나 금세 흐지부지되지도 않는다.

 

지게차 포크의 상승과 하강 같은 계층이동 가능성도, 

어떤 청승이나 극적 전환도 없이 다만 허무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단조로운 서사를 매끄럽게 끌고 나간다.

 

 

나는 그들이 세상의 주류로 편입해 들어가는 통로 한복판을 당당하고 유연하게 걸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왈츠는커녕 햇빛 한줌 들어오지 않는 공간을 그것도 야간에만 부유하더라도,

안 보이는 곳에 놓인 기쁨을 찾아내고 삶의 질량을 거뜬히 감당하면서 어딘가에서 잘살 거라는 데에 방점을 찍는다.

 

이런 영화를 만나 마주하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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