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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속눈썹의 효능 - 이은규 본문

합의된 공감

속눈썹의 효능 - 이은규

레니에 2019. 3. 12. 17:59

속눈썹의 효능

 

 

때로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이 있다

 

가는 봄과

당신이라는 호칭

가슴을 여미던 단추 그리고 속눈썹 같은 것들

 

돌려받은 책장 사이에서 만난, 속눈썹

눈에 밟힌다는 건 마음을 찌른다는 것

건네준 사람의 것일까, 아니면 건네받은 사람

온 곳을 모르므로 누구에게도 갈 수 없는 마음일 때

깜박임의 습관을 잊고 초승달로 누운

 

지난봄을 펼치면 주문 같은 단어에 밑줄이 있고

이미 증오인 새봄을 펼쳐도 속눈썹 하나 누워 있을 뿐

책장을 넘기는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은

출처 모를 기억만 떠나는 방법을 잊었다

 

아지랑이의 착란을 걷다

눈에 든 꽃가루를 호ㅡ 하고 불어주던 당신의 입김

후두둑, 떨어지던 단추 그리고 한 잎의 속눈썹

언제 헤어진 줄 모르는 것들에게는 수소문이 없다

벌써 늦게 알았거나 이미 일찍 몰랐으므로

 

혼자의 꽃놀이에 다래끼를 얻어온 날,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것은 온다는 역설처럼 당신의 입김 없이도 봄날은 간다

 

화농의 봄, 다래끼

주문의 말 없이 스스로 주문인 마음으로

한 잎의 기억을

당신 이마와 닮은 돌멩이 사이에 숨겨놓고 오는 밤

책장을 펼치면 속눈썹 하나 다시 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올 거라 믿는, 꽃달

 

 

 

이은규 시집 『다정한 호칭』 중 '속눈썹의 효능' 전문

 

 

 

 

 

 

떨어지는 순간 대부분의 관계는 끝난다.

 

기다리던 봄꽃.

가을 단풍.

힘에 부친 당신.

 

효능을 입증하지 못하면 멀어진다.

지위를 상실하면,

 자격에 미달하면, 

기대에 미흡하면 속눈썹처럼 버리고 잊는다.

 

 

사는 일은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역할 놀이 같다.

그만두는 순간 관계는 끝나기 시작한다.

애틋한 봄날이 다시 전속력일 때 나는 그렇게 알아간다.

 

"가는 봄과 

당신이라는 호칭 

가슴을 여미던 단추" 그리고 속눈썹.

 

붙박이가 되지 못한 그들도 한때는 우리와 단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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