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관리 메뉴

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버스 유리창에 살며시 기대어 혼잣말 했지, "앞으로도 '고도'는 오지 않을 거야" <패터슨> 본문

합의된 공감

버스 유리창에 살며시 기대어 혼잣말 했지, "앞으로도 '고도'는 오지 않을 거야" <패터슨>

레니에 2019. 7. 17. 11:59

 

나의 일상은 마음에 쏙 드는 새로운 음식이 연이어 나오는 풀 코스 정식이 아니다.
뱅글뱅글 맴도는 일의 반복이다.

패터슨이 모는 버스는 딱 행복한 지점만을 골라 항구적으로 안착하거나
지름길을 택해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어제 만난 승객이 오늘 다시 그가 운전하는 버스에 오른다.
다들 몇 개쯤은 보듬고 살 고민도 덩달아 마음에 올라탄다.

패터슨은 그것들을 죄다 끌어안고 버스를 몰며, 

창밖 풍경이 변하듯 어제와는 어딘가 다를 나날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한다.

 

 

 

 

 

영화는 판에 박은 듯한 자극적인 방식으로 관객을 유혹하지 않았다.
카메라는 패터슨의 엇비슷한 매일을 게으름뱅이처럼 관찰한다.

기승전결 없는 그 서사가 무척 사랑스러웠다.

싱거운 현실 안에도 어쩌면 인생 전부와 맞바꿀만한 의미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다만 영화는 차분하게 그려낸다.

 

 

 
 

패터슨은 일이 끝나면 단골 가게로 가서 늘 앉던 자리에 앉는다.
그는 그 반복에 한결같이 머문다.

사실 패터슨의 삶의 전환 가능성은 그가 들고다니는 도시락통처럼 작다랗다.

영화는 사람이 대개 어제의 지향을 오늘 다시 이어받아 착실히 노선을 지키듯,
내가 살면서 빈번히 체험하는 쳇바퀴같은 일상을 여러 장에 걸쳐 파노라마처럼 펼쳐놓는다.

 

도돌이표 일상의 문을 몸가짐 조심하듯 열고 닫는 패터슨 부부의 태도에 마음이 시큰했다.
여러 조건이 미흡하거나 부재한 상황에서 어제와 닮은 오늘을 사는,

그 간단해 보이는 행위도 사실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가 예사롭게 펼쳐보이는 일상의 변주가 전혀 식상하지 않다.

보잘것없는 그 하루하루는 우리가 여러 형태의 노력을 거듭한 끝에 이룬 삶의 기록일 테니까.

 

 

 

 

 

 

 

나의 삶은 놀라운 기술 혁신이나 사회안전망, 거대담론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개체로서 일상의 작은 변화에 무심하지 않은 의지로 보호된다.

어제가 오늘의 데칼코마니처럼 보여도,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쌍둥이들이 그러하듯 그 동일성도 미분하면 사뭇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심심한 하루하루를 살다가도 미세먼지가 유입되듯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 스트레스를 받으면 
빨리 평범해서 때로 따분하던 일상으로 돌아가 익숙한 무료함에 묻히고 싶다.

불안정을 경험하고 나서야 싱겁기 그지없던 일상의 가치를 뒤늦게 절감한다.

 

 

 

 

살면서 유심히 살펴야 하는 중요한 대목들.
소나기 같은 우연이 살짝 시답잖은 일상에 더해져도 순간의 뉘앙스가 바뀐다.

어느 날은 노을빛이 조금만 달라져도 무릇 산다는 게 신비롭다.

여느 때와 달리 마음이 떠들썩한 날이 있다.

어느 날은 기분이 바닥으로 착 가라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다한 하룻날의 미지근함을 기꺼이 끌어안는다.


그렇게 생이 지나간다.

 

 

 

 

 

 

 

 

 

'합의된 공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토지> 서문을 읽었다  (0) 2019.12.25
물 끓이기  (0) 2019.12.07
속눈썹의 효능 - 이은규  (0) 2019.03.12
서로를 향해 열린 틈새 <인 디 아일>  (0) 2019.02.26
그 다음 날 - 뭉크  (0) 2018.10.1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