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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영화 "미나리"를 보고서 본문

합의된 공감

영화 "미나리"를 보고서

레니에 2021. 3. 26. 19:16

↑영화 시작 전.
스크린 양옆 커튼이 접히고 화면 크기가 커지며 영화가 시작한다.

 

 

 

 

 

 

 

1.

극장은 한발 물러서야 볼 수 있는 세계다.
스크린과 일정 거리를 두어야 영화가 골고루 보인다.

거리가 너무 멀어도 선명도가 떨어져 세부와 생생한 현장감을 놓친다.

 

 

 

 

2.

영화 "미나리"는 이민자 이야기를 다뤘다.

사람은 너나없이 익숙한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 용케 살아남는 서사를 쓰다가 생을 마친다.

 

식물의 씨앗이 모체를 떠나 치열한 생존경쟁을 치르는 천신만고 끝에 뿌리를 내리고,
이민자가 모국을 떠나 낯선 세계서 가까스로 정착한 서사도 그와 유사하겠다.

 

 

 

 

3.

부부의 세계 또한 이민자가 마주하는 환경처럼 각자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일이 '이민'이라면
'결혼'은 자기를 떠나 다른 세계로 거처를 옮기는 일이다.

 

 

 

 

 

4.

영화 "미나리"는 한국계 이주민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실제 두드러진 갈등은 현지인과의 문화 차이나 인종차별 문제보다는 가족 간의 간극이다.

 

데이빗은 외할머니와의 조우가 달갑잖다.

손자가 만난 할머니는 손자의 예상을 벗어난 낯선 세계다.

 

오랫동안 함께 한 부부의 세계 또한 이민자가 마주하는 환경처럼 막막할 때가 있다.

모니카는 남편 제이콥과 갈등하며 상처 받고

결혼 관계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그녀는 다른 곳으로 옮겨 머무르려 한다.

 

순자 할머니 또한 미국 문화와 환경보다는 가치관이 다른 자손과의 동거가 더 힘들었는지 모른다.

 

 

 

 

 

5.

한해에 보통 70억 마리의 수평아리가 태어난 지 하루나 이틀 사이에 분쇄기로 갈려 죽는다.
제이콥은 데이빗에게 "수평아리는 맛이 없어"서 라고 하지만
사실 수평아리의 도태는 경제성 때문이다.

어느 기준으로 보면 알도 못 낳는 데다

같은 양의 사료를 먹어도 암탉보다 성장이 더뎌 고깃값으로도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는 수평아리는
키워 봐야 사룟값만 축낼 골칫덩이다.

 

 

 

 

 

6.

제이콥과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처럼 자기 꿈을 감별한다.
현실적인 모니카와 다분히 이상적인 제이콥의 관계는 바퀴 달린 집처럼 삐걱대고 흔들린다.

하지만 '내 가족에게 더 나은 것을 먹이고 입히며,
보다 나은 미래를 개척'하려 발버둥치는 모습은 다르지 않다.

 

 

 

 

 

7.

이사하던 날 바닥서 잠 자기를 거부했던 이들이 화재 후에는 다 함께 바닥에서 잠을 잔다.

 

그 기억도 노을빛 금세 흩어지듯이 순식간에 사라지겠지만,

어느 날의 우리는 가족에 의지해 어둠 속을 헤쳐 나왔고 밑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힘 안 들이고 유지되는 가족은 드물다.

 

가족은 이민자가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처럼 

서로를 만족시킬 기술을 배워 무시로 활용할 때 유지되는 최소단위 공동체이다.


 

 

 

 

8.

한국어가 서툴다는 스티븐 연 씨의 한국어 연기가 워낙 탁월해서 놀랐다.

영화 "버닝" 때보다 한층 발전했는데 그의 노력이 눈에 보였다.

 

한예리 씨의 개성 강한 표정 연기도 훌륭했고,

아역을 맡은 어린 배우들도 연기를 깜찍하게 잘했다.

 

윤여정 씨 연기에서는 할머니 냄새가 났다.

 

 

 

 

 

9.

꿈을 가진 이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희망이 있을 법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자마자 '가족'으로 건너와 가족시민권을 획득해 성장하고,

관계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많은 일을 이루면서 달고 알싸한 인생을 맛본다.

 

그러다가 영화 "미나리"의 전개처럼 얼결에 엔딩을 맞는다.

 

 

 

 

10.

태아가 막막한 산도를 기를 쓰고 헤쳐 나와 도착했던 미지의 세계 '가족'.

 

가족의 돌봄과 관심에 기대어 태아는 나날이 몸집을 불리며 위험에 대한 대응력을 갖췄다.

그 공동체는 성장과 성취의 토대였다.

 

또한 가족은 나와 다른 이방인이 바글대는 신대륙처럼 갈등의 원천이었고,

때로는 관계를 지탱하던 가치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도 했다.

 

한데 어우러져 살던 그 서사도 점차 희미해지고

인생은 단 하나의 외길로 이어져 사람 사는 일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겠지만,

그러하더라도 한때 우리가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인 때가 있었다.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있었다.

 

 

 

 

 

 

↑영화(映畵)가 끝났다.

 

나는 태어나 무슨 영화(榮華)를 기대하고 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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