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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약속된 땅이 없어도...<노매드랜드> 본문

합의된 공감

약속된 땅이 없어도...<노매드랜드>

레니에 2021. 5. 5. 13:46

 

"춥고 황량한 우주를 향해 나아가려면 웅장한 설계도 같은 것은 잊어야 한다.
입자에게는 목적이 없으며, '우주 깊은 곳을 배회하면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궁극의 해답' 같은 것도 없다. 
그 대신 특별한 입자 집단이 주관적인 세계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성찰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엔드 오브 타임> 중에서

 

 

 

 

나의 조상이 내 몸에 새겨 놓은 유전자 덕분에 나는 종종 일탈을 꿈꾼다.

 

현재 누리는 삶이 안온하고 익숙하며
일상이 지나치게 확실해서 외려 불확실하거나 미묘한 곳으로 떠나는 때가 있다.

 바람 한점 없는 따뜻한 날씨 같은 풍요 속에도 고달픈 부분이 있어서

그 평범한 생활로부터 나를 소외하며 집이 아닌 노지나 호텔로 향한다.

 

 

 

 

나는 그렇게 살도록 생겨 먹은 사람이지만 내가 직면한 현실은 나의 탈출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온 신경을 밝혀 어둠을 살피듯이 돈과 지위, 먹을 것을 밝혔다.

 

 

어둠이 깊어야 그 어둠이 막을 수 없는 빛이 흘러나온다.

극장서 영화를 볼 때도 어둠을 먼저 만나야 한다.

어둠이 영화를 더 낫게 만든다.

 

펀을 지탱하던 세계의 문이 갑자기 닫혔다.
회사가 문을 닫았고 마을도 폐쇄되었으며 남편은 죽었다.
펀은 자신이 안주한 생태계가 불모지가 되자 길을 나선다.

갈 곳이 없는 그녀가 갈 곳을 찾아 나서지만 목적지가 없다.

좋게 말하면 목적지는 특정 장소가 아닌 '여정'이고 거칠게 말하면 되는대로 굴러가는 것이다. 

 

 

 

 

 

펀은 초강대국이자 광활한 영토를 가진 미국서 안정된 자리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내 눈에 그의 처지는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라는 자그마한 세상, 그곳에서도 먼지 같은 입자로 부유하는 나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발 디딜 곳 없는 낡은 밴에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듯이 구겨 넣지 않는다.

 

아무도 그의 삶을 동의하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이 옮겨가지 않아도

펀은 삶의 다음 단계로 시선을 옮기며 나아간다.

 

 

 

 

 

노마드(노매드)라는 말에는 여러 케케묵은 정서가 버무려져 사람을 유혹하지만 집밖 여정은 험난하다.

길 위에는 장애물이 있으며 길은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다.

 

심각한 건강 문제나 경제 문제 같은 변수도 늘 따라다니며

그녀가 거주하는 작은 밴에도 고민과 불편은 크게 마련될 것이다.

 

여행자의 마음도 날씨와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육지에서는 막연히 바다를 동경하다가

막상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에 나가서는 육지로 회귀하려는 변덕을 무시로 부린다.

그러나 내가 항상 볼 수 있는 것은 '겉' 뿐이며 하는 것은 '짐작'이고 고집하는 것은 '편견'이다.

나는 너무도 복잡한 당신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러니 나는 당신이 주어진 환경 조건에서 썩 잘하고 있는 셈이라고만 생각한다.

 

 

 

 

 

유목민들은 우리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사냥감을 쫓아 이동했듯이 단기 일자리를 따라 다닌다.

그리고 옛날 조상들처럼 부족 구성원에게 언제 사냥을 나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외떨어져 있어도 사람은 다른 생물과 뒤섞여 존재한다.

언제 어디서든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은 하다못해 곁에 식물이라도 있다면 달라진다.

 

식물은 공기정화도 하지만 사람의 감정 상태를 곧잘 바꾼다.

아울러 생물은 우리 상식과 엄청나게 다른 환경에서도 적응하며 존재한다.

 

 

 

 

 

프란시스 맥도맨드 씨는 영화를 위한 얼굴을 가지고 태어난 듯하다.

그는 "쓰리 빌보드"에서처럼 손쉽게 부서질 정도로 연약한 사람살이에 대응하는 단단한 역할로 안성맞춤이다.

 

무언가를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을 듯한 얼굴이면서,

아직 배우거나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를 위해 이미 손에 쥐었거나 아는 것을 단호히 버릴 것 같다.

 

여기저기서 혀를 끌끌 차대는 냉소를 냉소하면서

과거는 다 구석에 밀쳐두고 현재와 맞물려 씩씩하게 굴러갈 것처럼 보인다.

 

 

 

 

지구 환경은 어떤 생물들에겐 매우 불리하다.

백인은 백인이어서 다른 인종보다 훨씬 안전하게 미국 땅에서 살아간다.

만약에 흑인이 펀처럼 밴을 몰고 노매드로 살아간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적의가 그를 쏘아볼 것이다.

 

거대 제국 아마존이 세금을 이용해 제공하는 일자리가 어떤 관객에겐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런 환경의 설계와 구조의 악순환을 경계하고 살펴볼 필요가 분명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어차피 풍요와 결핍이 공존한다.

 

기업과 개인은 서로에게 이익이 남는 방식으로 서로를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할 뿐이다.

 

나는 펀의 선택도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여행과 자연의 이미지는 대개 아름다워도

 그 속에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잔인한 파괴가 깃들어 있다.

특정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노마드가 극복해야 할 과제도 수두룩할 것이다.

 

그 모든 요소와 친해지면서 자기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가로막지 않는 이가 진정한 노마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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