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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삶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다, 영화 "콜럼버스" 본문

합의된 공감

삶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다, 영화 "콜럼버스"

레니에 2022. 7. 22. 22:56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밤낮없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하루가 멀다고 서로 격렬한 말다툼을 벌이거나, 눈을 까뒤집고 호통을 치다가
마침내 뺨따귀를 사정없이 올려붙이고 머리칼이나 멱살을 움켜잡고 싸운다.

그러다가 꺼억꺼억 운다.

 

맛을 돋우기 위해  짜고 맵고 쓰고 시고 단 양념으로 버무리고,

지나치다 싶게 차거나 뜨거운 국물 음식 같은 빤한 전개가 

비릿하고 들척지근한 재료를 개운하게 하고 더부룩하던 속을 풀 때가 있지만, 

소화기관 스트레스 등으로 거북하여 부러 피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영화는 잠풍 같다.
'오즈 야스지로'나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처럼 구성 규모가 작고

감정이 차근히 가라앉아 잠잠하다.  

영화는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콜럼버스'를 배경으로 삼아

자기 인생의 건축주이자 설계자이고 시공자이며 관리자일 이들의 고민을 둘러본다.

 

 

 

 

Miller House, Eero Saarinen, 1957

평이한 전개보다는 앞서간 건축가들의 작업스타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는 건축물을 통해 건축의 구조 역학처럼 삶을 지탱하는 뼈대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재료의 이질성과 복합성,

상호연관성과 작용성, 정체성 등을 확고하게 드러내는 내외면을 보여준다.

 

 

 

 

 

 

Irwin conference

 

사람이 사는 시공간은 본질보다는 형식에 더 영향을 받는다.

비가시적이고 까다로운 구조가 아니라 단박에 드러나는 스타일과 폼이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의 관심을 독차지하며 본질을 먹여 살린다.

 

한국 아파트 분양시장이 단지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웅장한 문주에 집착하듯

건축도 우리의 취약한 면을 보호하거나 감추고

우리가 자랑스러워하거나 바람직하게 여기는 특질을 강조한다.

 

 

 

 

 

North Christian Church, Eero Saarinen, 1964

종교 건축물 성당은 보통 주출입구 반대편으로 사람의 시선을 넌지시 유도한다.
건물이 소실점 구도로 사람에게 하나의 이상적인 목표에 집중하도록 재촉하는데

주연 배우가 서 있는 위 건물은 그 관습에 저항한다.

 

화려한 장식을 앞세운 이전 세기와 달리 모더니즘은 단순함을 추구하며

통념과 선입견을 거부하고

장식에 돈을 쏟아붓는 관행을 걷어찼다.

 

그러나 작용에는 어김없이 반작용이 따랐다.

어떤 모더니즘은 지나치게 해맑은 형광등처럼 창백했다.

모더니즘 건축이 "적은 것이 많은 것, 간결하고 적은 것이 더 좋다(Less is More)"고 목소리를 높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은 "적은 것은 지루하고 따분하다(Less is Bore)"며 손가락질했다.

 

유행이 유행에 등 떠밀려 방향도 없이 사라지고,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전 시대를 주름잡던 사조에게

"나는 너에게 질렸어!"라고 매몰차게 말했다.

 

 

 

 

The Republic Newspaper Building

모더니즘 건축이 강조한 균형과 대칭, 단순하면서 날카로운 직선,

간결한 형태가 돋보인다. 

철강과 유리는 투명성과 개방성 확보에 유리하여 공간이 안과 밖으로 열리도록 한다.


그러나 때때로 그 강박에 사람이 갇힌다.

합리와 이성을 강조하고 기능과 효율로 공간을 재단하고 분류한 그 강박이 되레

삶의 자유분방한 형태와 아름다움에 관한 호기심을 가둔다.

 

군더더기를 제거한 모더니즘 구조에서는 사람과 생활 요소가 군더더기로,

전체와 디자인에 기여하는 작거나 적은 소품으로 전락한다.

 

모더니즘의 간결함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감정 과잉 상태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때가 있지만,

고전적인 장식주의가 모더니즘보다 더 큰 만족을 안겨주기도 한다.

 

 

 

 

 

 

스타일에 대한 선호가 혼재한 세상에서

특정 스타일이나 건축 미학에 애착을 가진 옹호자들은 말다툼을 벌이곤 한다.

 

위 장면에서의 주인공들처럼 선례를 따르려는 신중함과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에는

어느 정도의 두려움이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우주로 향하는 로켓은 특정 고도에 이르면 지구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채택한

보조로켓을 버려야 목표궤도에 진입할 수 있음에도

나는 가끔 분리 타이밍을 놓치고 원래 있던 자리인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

 

 

 

 

Columbus City Hall

 

영화에 나오는 기념비적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존재 형식을 고민하며 크든 작든 자기 삶을 짓는 건축에 깊이 빠진다.

 

그리고 인간은 남에게 '보여 줄 수 있어서' 구조물을 짓는다.

자신이 얼마나 여유 있고 너그러운 사람인지를 보여주려 애쓴다.

 

고유성이 드러나는 건축보다는

높직높직한 아파트처럼 표준화된 부동산이 각광받는 세상에 살면서

취향의 차이가 아닌 취향의 평준화를 이루는 데 골몰한다.

나 같은 사람은 그랬다.

 

귀밑머리가 서리처럼 허옇게 희어가는데,

세상의 변덕과 맞설 철학 따위 하나 영글 기미 도무지 보이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그랬다저랬다 했다.

 

지금도 말 한마디 자칫 잘못하면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무리하다가 발목이나 허리가 삐끗하면 한동안 일어날 수가 없는 세상에 사는 나는 그저 그러하였다. 

 

 

 

애플티비 드라마 <파친코> 8부작 중 4편을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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