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탑건: 매버릭>, "매버릭"이 외곬 인생 "매버릭들"에게 바치는 헌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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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매버릭>, "매버릭"이 외곬 인생 "매버릭들"에게 바치는 헌사

레니에 2022. 7. 28. 10:28

누가 보면 사는 낙이 그것밖에 없는 사람처럼 연애를 하지.
이런 거라도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반문하듯이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침침한 눈으로 책을 끼고 살다가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탑건>의 '매버릭'이 36년 만에 살아 돌아왔다.

오매불망 기다린 너무너무너무 전형적인 오락영화다.

세월의 간극이 고스란히 얼굴에 남은 '매버릭'.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그의 콜사인이자 영화의 부제, 혀 꼬부라진 영어로 "매버릭(maverick)"은 

개성이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을 일컫는다.

 

고집불통 매버릭은 여전히 삐딱하다.
전투기는 F-14 톰캣에서 F-18 슈퍼호넷으로 바뀌었지만 그가 주로 타는 것은 삐딱선이다.


 

 

 

세월 참 빠르다.
매버릭과 내가 "자, 인생아 제대로 한판 붙어보자!"라고 호기를 부리며

천지분간 못하던 20대 시절은 까마득히 멀어졌다.

그러나 매버릭의 타고난 기질만은 그대로다.
진급보다는 비행에 미쳐 별을 달지 못한 독불장군이며
세상을 모나지 않게 살지 못하는 독고다이다.

매버릭은 자주 상관이나 동료가 추정하는 예상 경로와 정상 범위를 벗어나 비행한다.
그는 적군이 발사한 미사일뿐만 아니라 아군의 경직된 조직 문화에서 살아남으려 공중에
플레어를 투발하고 회피 기동한다.
툭하면 꼬락서니 한심한 꼰대 소리나 들으며.

 

 

그러고 보니 우리도 매버릭처럼 각자의 전장에서, 각자가 부여한 목표와 임무를 띠고 분투 중이다.
자칫 방심하면 꼬리를 물고 따라붙는 적기의 공대공미사일이나

지상에서 발사한 대공미사일에 맞아 추락한다.

 

과거에 치른 전투로 입은 내상은 남들은 모르는 트라우마다.
전투기에 탑재한 무기와 연료는 한정되어 있고,
작전 시간이 촉박하다.
임무 완수, 생존 확률이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앞심과 뒷심을 발휘하며
온몸을 짓누르는 중력가속도를 견딘다.

우리 쫌 대단하다.


 

 

"파일럿의 시대는 끝을 향해 가고 있어, 매버릭!"

지금 다 그런다.
사람은 점점 AI로 대체되고, 인생도 좌충우돌이든 직진이든 결말을 향해 때굴때굴 구르는데,
까칠한 매버릭은 뜸 들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하지.

"그럴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매버릭은 절대 소수다.
그는 남이 작성한 매뉴얼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남이 가는 길을 따라 쳇바퀴 뱅글뱅글 돌기를 거부하며
둥글둥글 살지 않는 대가는 '진급 탈락'이거나 진급을 자진 반납하는 등식의 성립이지만,
매버릭의 위험천만한 비행은 허공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갈피이자 나침판이다.

자기만의 비행경로와 속도는 오로지 자신이 설정하고 제어하면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매버릭의 옹고집을 나는 흐뭇이 바라보았다.

영웅의 활약기와 통쾌한 성공담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갈 데까지 가보는 서사에 공감하였다.

판타지에서 리얼리티를 본다.
우리도 어쩌면 매버릭처럼 내 편 별로 없는 세상에서 똥고집 깨나 부리며

중력을 거스르는 외곬 인생이니까.

 

 

 

 

 

 


*사족을 안 붙이면 똥 누고 뒤 안 닦은 거 같아서 끄적임.


1. <탑건 1>에 나온 F-14 톰캣(수고양이, 고양이 수컷, 수괭이)이 영화 말미에 다시 등장한다.

나는 오락영화를 경건하게 관람하는 바보가 아니라서 전편에 대한 오마주인 그 장면을 향수로서 즐겼다.
덕력 30년에 가까운 밀덕(밀리터리 매니아)은 애정하는 전투기와의 재회가 반가웠다.

미국이 지금은 앙숙인 이란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톰캣'을 판매했었다.
1970년대 후반 팔라비 왕조 시절의 이란은 친미국가였으나 1979년 발생한 이란 혁명으로 양국은 견원지간이 되었다.

미 해군이 퇴역시킨 톰캣을 미국의 적성국 이란이 부품 공급 중단에도 현재 운용하며 미국에 대항하는 아이러니가
일어나는 세계에 내가 산다.


 

 

2. 제니퍼 코넬리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누들스'의 첫사랑 '데보라' 아역으로 나왔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만든 음악으로 더 빛난 영화였는데, "데보라의 테마"는
블로그에 여러 번 올렸었다.

두 영화를 보았던  80년대 추억이 엊그제 만난 사람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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