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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작은 새 후미진 허공에 울음 하나 떨구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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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 후미진 허공에 울음 하나 떨구고......

레니에 2022. 11. 9. 10:48

<아버지의 병환>

우리 아버지가 어제 풀 지러 갔다.
풀을 묶을 때 벌벌 떨렸다고 한다.
풀을 다 묶고 나서 지고 오다가
성춘네 집 언덕 위에 쉬다가 일어서는데
뒤에 있는 돌멩이에 받혀서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풀하고 굴러 내려와서 도랑 바닥에 떨어졌다.
짐도 등때기에 지고 있었다.
웬 사람이 뛰어와서 아버지를 일으켰다.
앉아서 헐떡헐떡하며 숨도 오래 있다 쉬고 했다 한다.
내가 거기 가서 그 높은 곳을 쳐다보고 울었다.


안동 대곡분교 3년 김규필, 1969년, 시집 <일하는 아이들> , 양철북






아비가 돌부리에 걸려 중심을 잃고 휘우뚱 기울어졌다.
시를 쓴 아이는 풀 죽은 아비가 마음에 걸려 그가 고꾸라진 곳을 부러 찾아가 운다.

그들이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고 주저앉은 지점에서
나도 호흡을 고르며 잠시 쉰다.

엊그제 입동이 지났다.
낮이 타들어가는 초처럼 짧아지고 밤은 자꾸만 길어진다.
풀은 마르는데,
세상에는 거짓말이 장맛비같이 흥건하다.

작은 새가 후미진 허공에 울음 하나 떨구는 것으로 제 존재를 알린다.
입 밖으로 울음 같은 신음을 내뱉은 그 자리에서
새는 노를 젓듯 날개를 치며 나아가고,
아비와 아이도 툭툭 털고 일어났을 게다.

서러운 나날이 손에 침 발라 넘기는 페이지처럼 한 장씩 한 장씩 넘어간다.

다들 사는 게 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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