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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단 한 사람을 향한, 하나뿐인 패스 본문

잡담 or 한담

단 한 사람을 향한, 하나뿐인 패스

레니에 2022. 12. 13. 00:20

1.
정상급 선수가 골문으로 쇄도하면 수비수 3명이 우르르 몰려가 앞에서 가로막는다.
다른 선수 3명은 그를 따라 잡기 위해 헐레벌떡 전력 질주한다.


2.
탑클래스 선수는 존재감만으로 상대 수비수를 끌어와
자기편에게 공간을 만들어준다.

예닐곱 명에 둘러싸여도
자기가 가진 공을 침착하게 통제하며 기회를 엿보다
완벽한 타이밍에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힘 빼고 툭 어시스트.
지켜보던 상대 팀과 응원단 모두 맥이 빠진다.



3.
그동안 한국 대표팀이 강팀을 만나면 우왕좌왕 딱 그랬는데,
이번에는 손흥민 선수가 호날두가 뛰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그런 장면을 선보였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 손흥민 개인의 위상이자
손흥민이니까 가능한 장면이지만,
우리팀도 그동안 많이 컸다.



4.
세상의 평가에 속거나,
누군가 만든 관념이나 사상,
내가 만든 나의 '정체성' 따위에 나부터 속지 말자 경계한다.

국가나 종교 등이 내가 에너지를 쏟을 만큼 가치가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머리와 논리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내 삶에 엄연하다.

그러니까 한국인이어서 영원히 벗길 수 없는 피부색 같은,
딱 보면 기쁘고 단박에 슬픈,
팔이 안으로 굽는 인지상정과 정서가 내게는 있다.


그가 운다. 냉혹한 승부를 마칠 때마다 그는 기뻐서도 울고 슬퍼서도 운다. 눈물은 좌절한 약자도 흘리고 최선을 다해 승리한 강자도 흘린다.


5.
손흥민 선수가 4년 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처럼 죽을 둥 살 둥 공을 몰고 나가자
내로라하는 포르투갈 선수들이 겹겹이 에워싸며 그의 앞길을 막았다.
그는 이미 부상을 입고 시야를 막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하나의 길을 보았고,
단 한 사람을 향해 패스했다.



6.
그는 나를 몰라도,
그가 보았다 하여 나도 눈여겨보고,
그이 나를 몰라도 그가 각별히 여겨서 내게도 특별한 것이 있다.

손흥민의 동료인 헤리 케인이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할 때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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