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관리 메뉴

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에드워드 호퍼, "부동(不動)과 정적(靜寂)의 몽상적인 조화" 본문

합의된 공감

에드워드 호퍼, "부동(不動)과 정적(靜寂)의 몽상적인 조화"

레니에 2023. 4. 29. 21:44


개막 전부터 화제였던 '에드워드 호퍼' 서울 전시회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림 관람에 더하여 '마크 스트랜드' 씨가 쓰고
'박상미' 씨가 옮긴 《빈방의 빛》을 읽는다.
 
저자는 퓰리처상을 받고 미국의 계관 시인으로 추대된 시인이자 미술가이며
옮긴이 또한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시와 그림에 조예가 깊다.

이 책은 고화질 컬러 도판이 좋은 데다 
언어의 사치와 의미 빈곤을 경계하는 저자의 능력이
그림의 가치와 해석을 재생산한다.
성적 향상 교양 쌓기와 전혀 무관한데, 전시회 여운과 함께 하기에는 적절하다.

 
 
 
 

빈방의 빛 / 39P

 
 
"House by the Railroad(철로 변 주택)"를 다룬 챕터의 제목은 <철로 변 집>이다.
 
역자는 '철로 변의 집'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격조사 "의"를 단호히 생략하고도 그림 속 집의 존재와 독자성을 드러낸다.
 
경제가 발전하는 사회일수록 여러 존재양식이 재개발 열풍에 사라진다.
이성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헤겔식 사고가 어딘가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존재양식을
놓치는 건 아닌지, 그래서 나는 저자의 문장에 기꺼이 호응한다.
 
"바로 이러한 가차없는 거부(拒否)의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철로 변 집'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든 그쪽으로 등을 돌리는 듯하다.
가장 단순하고도 콧대 높은 도도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기품 있게 굴복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나머지 글은 아래 '더보기'
 

 
 

 

더보기

철로 변 집

 

「나이트호크」와 더불어 「철로 변 집」은 호퍼의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기차로 여행하다가 한 번쯤 지나쳤을 법한, 외딴집이 있는 풍경이다.

집 옆으로 지나가고 있는 철길도 낯익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철길과 집은 유난히 가깝다.

아마도 이 집의 주인들은 소위 '개발' -이 경우에는 철로 개발일 것이다-이라고 불리는 것 때문에

집을 팔아야만 했던 희생자일지도 모른다.

집은 제자리를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침착하고 위엄마저 갖춘 생존자 같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집은 양지에 있지만 다가갈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햇빛이 애써 그 비밀스러움을 밝혀보려 하지만, 집은 결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른 시대의 유물인 양 혼자 우뚝 서 있는 이 집은 자신의 운을 다한 건축물이며, 알 수 없는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한때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곳이었기에 웅장하게 고립된 지금의 모습은 오히려 거부감을 증폭시킨다.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현관조차 보이지 않는다.
햇빛에 드러난 정교한 파사드는 아직 모양새가 좋다.
빛은 집의 건축적인 요소를 더욱 강화하는데 이것이 자칫 허술해 보일 수 있는 집을 견고하게 보이도록 한다.
그러나 빛은 집을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기보다는 최후의 순간이라도 되듯 극적으로 빛나게 한다.
이 집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빈틈없는 부정의 자세로 서 있기에 이제까지 고독과 연관 지어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오히려 이 집을 하찮아 보이게 할 뿐이다.


우리가 본 호퍼의 다른 그림처럼 이 그림에서도 기하학적 형태가 등장한다. 
이제는 우리 눈에 익숙해진 등변사다리꼴도 눈에 들어온다.
철로를 밑변으로 하고 처마를 윗변으로 한 등변사다리꼴이 왼쪽으로,
즉 빛이 오는 방향으로 미미하게 움직이는 듯하다.
하지만 화면 정중앙에 위치한 집의 강력한 수직성과 안정감은 이러한 움직임을 차단한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의 끌어당김이든, 

개발 또는 우리 자신의 연속성에 대한 끌어당김이든 집은 이러한 끌어당김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가차없는 거부(拒否)의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철로 변 집'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든 그쪽으로 등을 돌리는 듯하다.
가장 단순하고도 콧대 높은 도도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기품 있게 굴복하고 있는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