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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1. 오늘 아침 기온 18도. 벌써 다 지난 일이지만, 소낙성 강수 잦은 여름이었다. 처음엔 여름 가뭄 씻는 그 빗소리 반가워 한밤중에도 깨어있었지. 얼음땡 하는 아이처럼 앉아 혼자 있는 시간이 위로가 되었어. 그 시간도 차츰 지나니 나머지 비는 골머리 앓는 홍수일 뿐이고, 한 해 농사 망치는 재난으로 바뀌더라. 비 오시길 기다리다 해갈 되면 비가 멈추길 기다리는 변덕은 여전히 오락가락. 아무 데도 가기 싫은 아침인데 날씨가 헤벌쭉 웃으며 지랄이네. 2. 어제 운동량이 지나쳤는지 팔다리가 뻐근하고 뼈마디 저리는데, 날씨가 저 모양이라 쉬고 싶은 몸 따로 나다니려는 생각 따로 마음이 어수선하다. 일단 오전에는 서재에서 소설 을 읽으며 페이지 넘기듯 간간이 뒤척여야지. 김훈 씨의 글은 미문이지만 기름지지는 ..
엄마가 늦은 밤 단톡방에 "ㄷ" 한 글자를 남기셨다. 실수였다. 얼마 후 카톡을 열어본 며느님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재치로 "ㄹ"을 남기고, 고3 조카도 공부하다 말고 슬며시 "ㅁ"을, 중딩 조카는 살포시 "ㅂ"을 달았다. 말하는 족족 배꼽 웃음을 피우는 재주를 가진 막내아들은 그들로부터 먼 데서 "ㅅ"을, 나는 뒤늦게 전화로 엄마 안부를 확인하고 "ㅇ"을 내밀었다. 날이 밝으면 또 엄마의 자식임을 낱낱이 드러내는 낱소리가 이어지겠지.
"안물안궁". 그러니까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시겠지만, 이사했습니다. 미리 계획한 이삿날이 토요일이어서 어제 이전 신청을 했습니다. "지금 주문이 밀려 있으니 조금 기다리세요." 라고 할 줄 알았는데 웬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로켓배송하듯 불과 5분 만에 이전 완료 메일이 왔네요. 인스턴트 메신저에서 '대화창 나가기'하면 관계가 끝나듯 "DAUM" 포털과의 결별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블로그 주소는 https://mistymemorys.tistory.com/ 바뀌었습니다. 기존 주소와 닉네임은 사용 불가였어요. 새 닉네임은 "레니에"입니다. 로맹 가리의 소설 에 나오는 약간 덜떨어진 남자 이름입니다. 그는 번잡한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카페를 차리고 열정과 허무 사이에서 허송세월 하다가 어느..
"원균이라는 사람은 원래 거칠고 사나운 하나의 무지한 위인으로서 당초 이순신(李舜臣)과 공로 다툼을 하면서 백방으로 상대를 모함하여 결국 이순신을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일격에 적을 섬멸할 듯 큰소리를 쳤으나 지혜가 고갈되어 군사가 패하자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와 사졸들이 모두 어육(魚肉)이 되게 만들었으니 그때 그 죄를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 한산에서 한 번 패하자 뒤이어 호남(湖南)이 함몰되었고 호남이 함몰되고서는 나랏일이 다시 어찌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시사를 목도하건대 가슴이 찢어지고 뼈가 녹으려 한다."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년) 1. 우리 역사상 최악의 빌런을 꼽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물인 '원균'과 '명성황후'. 그들을 옹호하거나 비호하는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