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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개막 전부터 화제였던 '에드워드 호퍼' 서울 전시회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림 관람에 더하여 '마크 스트랜드' 씨가 쓰고 '박상미' 씨가 옮긴 《빈방의 빛》을 읽는다. 저자는 퓰리처상을 받고 미국의 계관 시인으로 추대된 시인이자 미술가이며 옮긴이 또한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시와 그림에 조예가 깊다. 이 책은 고화질 컬러 도판이 좋은 데다 언어의 사치와 의미 빈곤을 경계하는 저자의 능력이 그림의 가치와 해석을 재생산한다. 성적 향상 교양 쌓기와 전혀 무관한데, 전시회 여운과 함께 하기에는 적절하다. "House by the Railroad(철로 변 주택)"를 다룬 챕터의 제목은 이다. 역자는 '철로 변의 집'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격조사 "의"를 단호히 생략하고도 그림 속 집의..
#1 누가 봐도 변방의 삶이다. 도시에 살며 타인의 욕망을 만나고 그 욕망을 욕망하며 사는 나에게 사진 속 두 남녀는 가난하고 가난해서 의미를 잃은 외곽, 사람들이 더는 찾지 않아 지도에서 지워진 깊은 오지 같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며 환갑 진갑 다 지났을 남녀에게 나는 묻는다. 남자가 들꽃 한 움큼을 꺾어다 여자에게 건네고 담배 한 개비 물듯 꽃 하나 입에 물었는지. 아니면 여자가 꽃을 따서 남자 입에 한 송이 물려주고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를 뻔했다"는 눈빛으로 허름한 어깨에 기댔는지를. 본래 서로 짝이 아니었을 짝짝이 단추는 누가 달았는지를. 살다 보면 사는 일의 거대함과 왜소함, 이 세상에 오고 가는 일의 사소함, 권력층의 교활함과 집요함, 소시민의 소심함과 비열함에 대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