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문인수 (3)
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감천동 / 문인수 부산 감천항을 내려다보는 산비탈, 감천동 문화마을 골목길들은 참, 온통 애 터지게 좁아요. 그중에서도 거리 병목 같은 데 한토막은 어부바, 어느 한쪽 벽에다 등을 대고 어느 한쪽 벽엔 가슴을 붙여 또 하루 비집고 들고 나야 그러니까, 게걸음질을 쳐야 어디로든 똑바로 향할 수가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큰길가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두사람. 몸뻬 차림의 뚱뚱한 여자가 부스스한 머리, 키가 껑충한 사내더러 이죽거리며 잔뜩 눈 흘려요. "술 좀 대강 처먹지!" "왜, 내가 또 잠 못 들게 했나?" 게 골목, 그 통로를 경계로 둔 건너편 집과 건너편 집. 밤중, 사내의 헛소리며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친 여자. 여자의 지청구와 사내의 대꾸가 정류장에 나온 이웃 사람들 모두 낄낄낄 웃게 하지만 오랜 ..
만금이 절창이다 / 문인수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 물밀며 걸어 들어간 자국 따라 무겁게 되밀려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길, 그리 길지 않지만 지상에서 가장 긴 무척추동물 배밀이 같기도 하다. 등짐이 박아 넣은 것인지, 뻘이 빨아들이는 것인지 정강이까지 빠지는 침묵. 개펄은 무슨 엄숙한 식장 같다. 어디서 저런, 삶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을 보랴, 여인네들…… 여남은 명 누더기누더기 다가온다. 흑백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 없다. 최후처럼 쿵, 트럭 옆 땅바닥에다 조갯짐 망태를 부린다. 내동댕이치듯 벗어놓으며 저 할머니, 정색이다. "죽는 거시 낫겄어야, 정말로" 늙은 연명이 뱉은 절창이구나, 질펀하게 번지는 만금이다. 문인수 시집 『배꼽』중 전문 ..
바퀴 / 문인수 말복날 수륜리(水輪里) 유원지엘 갔다. 우리는 계곡물 콸콸거리는 어느 식당 숲 그늘에 자릴 잡았다. 물가 여기저기 네모난 살평상을 박아놓고, 그러니까 급류의 속도를 최대한 붙잡아놓은 집이다. 하지만 유수 같은 세월, 희끗희끗 달아나는 물살이다. 옆자리 살평상엔 중늙은이 아주머니 넷이 먼저 와 앉아 있다. 닭백숙에 소주도 두어 병 곁들여 조용히 복달임하는 중. 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으로 세월이라는 것이 흐를까, 계곡물 소리는 여기저기 커다랗게 엎딘 바위들도 연속, 험하게 잡아채 제 속도에 매단다. 그래도 그 소리 듣지 않으면 가지 않을 세월, 아주머니들은 음식상을 치우게 하고 각기 웅크리고 눕는다. 머리꼭대기에 발바닥, 머리꼭대기에 발바닥…… 친한 사이끼리 일생일대를 잇대며, 그러나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