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박경리 (34)
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를 읽었다. 도중에 쉬면 완독 하지 못할 거 같아서 매일 계속 읽었더니 3개월이 걸렸다. 여행이 그렇듯 독서도 고강도의 정신적 정서적 육체적 노동이다. 온몸이 하는 그 일에는 불편과 낯섦, 즐거움 등이 골고루 섞여 있다. 독서는 타인의 문법과 사유를 문자로 만나는 경험이어서 나름의 고충이 있다. 도 방언과 작가 고유의 표현 방식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경상도 방언 대화체가 많은 는 요즘 글이 아니고 내가 살던 시대가 아니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는 상당한 인내를 요구했다. 사실 그동안 마음의 빚이었다. 유명 외국 소설을 읽을 때마다, 토지가 언급될 때마다 갈등했는데 무엇보다 토지를 읽지 않은 이유는 분량 때문이었다. 스무 권은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지금 이 포스트처럼..
희열과 고통스러움, 절정이 지나가고 어둠과 정적이 에워싼다. 용이는 여자 가슴 위에 머리를 얹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는 신위도 제물도 없고 월선네의 힘찬 무가(巫歌)도 없고 용이 모친과 강청댁의 얼굴도 없었다. 마을도 없었다. 마을도 없고 삼거리의 주막도 없었다. 논가..
혜관은 못 들은 척 강 언덕에서 강을 바라보며 목탁을 치고 독경을 하고 있었다. "울퉁불퉁 돌대가리 중이 그래도 불경 욀 줄은 아는디." 주갑은 중얼거리다가 킬킬거리며 웃는다. 그리고 조끼 주머니 속에서 궐련을 꺼내어 붙여물고 피어오르는 연기 속의 강 건너편 나무 한그루를 바라..
"하지만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지요. 솔직하게 말입니다. 저는요, 송관수 김길상 그분들을 우러러 받들 만큼 어리지도 않고 자신을 기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독립이 될 거라는 달콤한 꿈도 꾸지 않습니다. 내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애국애..
서희는 흐느껴 울었다. 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았으나 흐르는 눈물은 멎지 않았다. 그가 앉은 별당, 어머니 별당아씨가 거처하던 곳, 비로소 서희는 어머니와 구천이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어머니는 불행한 여인이었던가, 나는 행복한 여인인가 서희는 자문한다. 어쨌거나 별당아씨는 사랑을 성취했다. 불행했지만 사랑을 성취했다. 구천이도, 자신에게는 배다른 숙부였지만 벼랑 끝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살다가 간 사람, 서희는 또다시 흐느껴 운다. 일생 동안 거의 흘리지 않았던 눈물의 둑이 터진 것처럼. 박효영의 자살 소식을 들은 서희는 연신 눈물을 흘린다. 서희도 박 의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희는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 좋아도 좋은 티를 내지 않았고 싫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귀녀의 생애가 끝나는 날 강포수의 생애도 끝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함께 죽으리라는 뜻이 아니다. 귀녀의 죽음은 어떤 형태로든 지금까지의 강포수 인생과는 같을 수 없는, 다른 것으로 변할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 강포수는 귀녀와 더불어 있다. 옥중과 옥 밖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엄연한 법의 거리요 지척이면서 가장 먼 그들, 서로가 서로를 보고 느낄 뿐이지만 그러나 강포수는 일찍이 귀녀가 이같이 자신 가까이 있는 것을 느낀 적이 없다. 가랑잎 더미 위에 쓰러뜨렸을 적에도 귀녀는 강포수에게 멀고 먼 존재였었다. 강포수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그것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주받은 악녀이건 축복받은 선녀이건 그것도 강포수하고는 관계가 없었다. 다만 거기 그 여자가 있다는 것과 그 여자를 위해 서러워해..
"부처는 대자대비(大慈大悲)라 하였고 예수는 사랑이라 하였고 공자는 인(仁)이라 했느니라. 세 가지 중에는 대자대비가 으뜸이라. 큰 슬픔 없이 사랑도 인도 자비도 있을 수 있겠느냐? 어찌하여 대자대비라 하였는고. 공(空)이요 무(無)이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마음으로 육신으로 진실로 빈 자이니 쉬어갈 고개가 대자요 사랑이요 인이라. 쉬어갈 고개도 없는 저 안일지옥의 무리들이 어찌하여 사람이며 생명이겠는가." (…) 고달픈 육신을 탓하지 마라. 고통의 무거운 짐을 벗으려 하지 마라. 우리가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만나게 된다면 우리 몸이 유리알같이 맑아졌을 때일까. 그 만남의 일순이 영원일까. 강쇠야 그것은 나도 모르겠네……. " "한이야 후회하든 아니하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르는 곳에서 생명과 더불어..
그날은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해저터널을 지나 발개라는 곳으로 간 이들은 조금 때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유별나게 물이 많이 빠져나간 갯벌,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갯벌에서 얘기를 주고받으며 조개를 파기 시작했다. <토지 16권. '5부 1권'. 252쪽. 마로니에북스> 조금 때 ----> 사리 ..
"맞는 놈 때리는 놈, 도처에 있는 그런 관계가 없어지겠습니까?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밥그릇 크기를 따져서 생긴 일입니까? 진주서 농청과 백정이 싸웠을 때도 이해와 상관없이 순전히 우월감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누르고 짓밟지 않고는 못 견디는 인간의 본성." (…) "그렇습니다. 인간의 본성 말입니다. 그 본성, 본성 말입니다. 밥그릇이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위냐 너가 위냐, 그것 때문에 더 많이 때리고 맞는 것입니다. 개인도 그렇고 민족도 그렇구요. 재물이나 권력이 한 인간의 생존을 지탱하는 데 얼마만큼이나 필요하겠어요? 천재지변이 없는 한 평등이면 굶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보다 많은 재물, 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려는 것은 실상 배고픈 것하고 절실하게 관계되는 것..
송관수는 치열하게 살다 갔다. 신분제에 정면으로 저항하며 인간의 존엄을 외쳤다. 그는 형평사운동, 노동자파업, 독립운동에 관여하며 세상의 모멸로부터 그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 했다. 관수는 농민이었지만 백정의 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백정이란 굴레를 뒤집어썼다. 그 굴레가 대를 이어 아들에게까지 이어지자 깊은 좌절과 자기 비하에 빠진다. 하고많은 것중에 천대와 차별만을 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밖에 없는 부모의 한이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송관수의 저항의식은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양반들이나 여느 사람과는 달랐다. 그는 왕의 편도, 민족의 편도 아니었다. 대접받지 못하는 인간의 편에 서서 그는 강쇠와 함께 싸웠다. 관수는 가슴에 못박힌 장남 영광과의 재회를 앞두고 만주에서 콜레라로 죽는다. 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