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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최초엔 길상을 잃었고, 다음엔 상현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잃어버렸기 때문에 스스로를 버린 기화는 또 버림받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잃었고, 마지막 희망을 버렸기 때문에 그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망각한 것이다. 도망은 상실과 망각에서 오는 일종의 충격일까. (…) "봉순아! 니 어디 갈라꼬 여기 또 왔노!" 길상과의 이별이 봉순에게는 중심의 상실이었는지 모른다. 전참봉, 서의돈, 그 외 어정쩡하게 맺은 무의미한 인연들. 중심에서 멀어진 순간부터 어쩌면 봉순에게 삶은 잡다한 것이 되어버렸다. 서희는 아편에까지 손을 대 피폐해진 봉순이를 평사리로 돌아가도록 배려한다. 용정에서의 싸늘한 만남과는 달리 서희는 그녀를 가련히 여긴다. 서희는 길상이 투옥된 충격 속에서도 봉순과 그녀의 딸을 거두지만 봉순은 이미 인생을 지..
"차가운 빙하 같았던 생애. 먼곳에서 찬란하게 빛을 내던 사람들, 인생은 보석의 빛이 결코 아니요 뿌옇게 타오르는 모깃불, 목화씨 같은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발자취는 순전히 역행이었다는 생각도 한다. (…) 환이는 자신의 생애가 성인의 길이 아니었음을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투쟁과 방랑과 애증(愛憎)과 원한의 가파로운 고개를 넘은, 평지가 오히려 발끝에 설었던 오십 평생은 마음과 몸이 피로 물들었던 것처럼 격렬했었다. 환이는 무엇 때문에 살고 죽는 것인지 그것을 생각한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게 여장을 다 꾸려놓고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그 얼마 남지 않았을 시간에 열리지 않을 벽을 두드려본들 무슨 소용인가. 눈을 감은 채 환이 싱긋이 웃는다." "그 꽃 따서 화전을 만들어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하늘에는 은하가 뚜렷하게 흐르고 있었다. 석이는 비극적인 복동네 죽음이 묘하게 희극적인 것으로 착각한다. 봉기에 대한 증오감조차 묘하게 절실치가 않았고, 사람의 사는 모습들이 모두 광대(廣大)만 같다. 무궁한 곳에 무궁한 은하가 흐르는데-. (…)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치민다. 산다는 것이 통곡인 것만 같아. 오뉴월, 커가는 새끼를 먹이려고 야위어진 까치 생각을 한다. 봉기 늙은이도 그 야위어지는 까치 한 마리였다는 생각을 한다. 강물이 희번득인다. 밤에도 쉬지 않고 흐르는 강, 세월의 눈금도 없이 흘러가고 있다. 오만하고 냉정한 젊은 여자같이 강물은 혼자 흐르고 있다. (…) 미워할 수가 없었다. 한 철을 사는 나비가 부드러운 속잎을 찾아서 알을 까는 일이며, 파헤쳐진 흙더미 속에서 알을 먼저 피난시키..
동네에서 비명에 간 여자가 함안댁과 복동네만은 아니다. 미친 또출네는 불길 속에서 죽었고, 삼월이는 물에 빠져 죽었으며, 귀녀는 형장(刑場)에서 죽었다. 그러나 맑은 정신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함안댁과 복동네는 매우 비슷했다. (…) 타작마당은 마치 신풀이 한풀이의 장소로 변해간다. 상대가 심술궂기로 이름난 봉기였고, 안좋은 꼬투리는 대개 한두 개쯤 갖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고소해하고 한층 신이 나는 모양이다. 말뚝같이, 송곳같이 복동네 심장을 때려박고 찌르지는 않았다손 치더라도 뒤꼍에서 바늘 하나쯤은 복동네 심장에 꽂았을, 그런 위인일수록 이상하게 남보다 분개하고 규탄하고 처단하자는 주장이 강했으니. 그것도 양심인지 모를 일이다. 남의 말을 즐기는 입은 늘 무책임하다. 그들은 남을 위해 손을 내..
"쓸개 빠진 놈들은 3·1운동 때문에 왜놈들이 혼비백산하여 유화정책을 쓰게 됐다면서 뭐 하나 따낸 듯 말하지만 어림없는 소리, 총칼보다 그놈의 유화정책이라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어. (…) 생각해보아, 총칼로 죽이느니보다 산송장을 만드는 것이 얼마만 한 이득을 가져오느냐를. 첫째, 백성들의 분노가 손실된다. 일본에 대한 분노보다 매국노, 반역자, 친일분자에 대한 분노가 더 강한 것은 자네도 알 만한 일이 아니겠나? 백성들의 분노는 힘이야. 힘을 분열시키는 것은 정복자들의 금과옥조야. 둘째, 매국노, 반역자, 친일파, 그런 자들도 있는데 내가 하는 일쯤, 하고 백성들 양심에도 타협의 소지를 마련하거나 또 힘이 약화됨을 느끼며 체념하는 것으로써 그나마 나는 깨끗하다는 자위에 빠져버린다...
"홍아." "예." "니하고 나하고는 시작도 못하고… 내가 늙어부린 것 겉다." 홍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무엇을 시작해 보지도 못하였는가 잘 알겠기 때문이다. 부자간의 정의도 나누어보지 못하고, 그리고 죽을 날이 가까워왔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 "니는 이곳에 정이 안 들 기다. 그라고 니가 이곳에 있어 머하겄노. 얽매이서 사는 것은 내 하나로 끝내는 기다. 니 뜻대로 한분 살아보아라. 내 핏줄인데 설마 니가 나쁜 놈이야 되겄나." "아, 아부지이!" 중풍으로 쓰러진 이용(龍)이 평사리로 돌아왔다. 아들 홍(弘)이를 데리고 선영에 간 용이는 생모에 대한 증오와 젊은 날 자신이 안팎으로 표출한 갈등과 분노에 상처 받아 비뚤어져 가는 홍이에게 얽매여 사는 것은 그 자신으로 끝나야 한다고 말한다. 인연이라..
"그 말 할 줄 알았다." "누굴 탓하는 건 아닙니다. 내 아버지의 탓을 뉘보고 원망하겄십니까. 사람대접 못 받는다고 해서 나는 아우성도 칠 수 없었십니다. 통곡도 못해 보았십니다. 할 수 없었지요.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이니께. 형님, 나는 이대로가 좋십니다." (…) "사내자식이… 누가 ..
임이네는 본시 죄의식이 엷은 여자다. 죄의식을 가지라는 것도 실상 어거지였고 칠성이의 죄명 탓으로 모든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만 것을 그는 날벼락으로 생각했고 재앙이라 생각했으며 부부로서의 정신적인 유대를 갖지 못한 만큼 고난과 슬픔과 또한 기쁨까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비춰주는 대로의 반응일 뿐이었다. 고마운 척, 눈물겨운 척할 수 있는 교활한 지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넘쳐흐르는 생명력, 조금만 땅이 걸고 짓밟지만 않으면 무섭게 자라나는 잡풀 같은 생명력은 교활한 지혜를 위해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 눈에 그가 거들먹거리는 것같이 보였다는 것은 윤씨부인이 도와준다거나 먹고 입는 것이 자기네들과 같아졌다는 시샘 때문에 그렇기도 하려니와 그 무성한 생명력에..
"노인은 어디서 오는 길이라?" "어디랄 것 있소, 조선 팔도 뜬구름같이 다니니." "객지바람을 많이 쏘였으면 아는 것도 많겄소이." "아는 게 뭐 있겠소 그저 인심을 알 뿐이지." "그란께로, 인심을 안다면 아는 거 아닌게라우? 그래 워디가 젤 인심이 좋습디여?" "젤 좋은 곳이 어디 있겠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