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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현실과 낭만 사이의 이행(移行), 영화 <파리로 가는 길> 본문

합의된 공감

현실과 낭만 사이의 이행(移行), 영화 <파리로 가는 길>

레니에 2020. 3. 1. 08:02

알 만큼 알고 해볼 만큼 해본 나이 중년.
그래도 뜻밖의 일은 항상 생긴다.
그 변수로 인해 인생이 좋은 쪽이나 나쁜 쪽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최악이다 싶은 순간조차 행운은 찾아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루이 암스트롱처럼 끝장나게 노래한다.

 

"Yes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파리, 이탈리아 하면 왠지 기분이 들뜬다.
막상 가면 별의별 일이 다 생겨 역시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지만
그래도 파리라는 고유명사를 떠올리며 우울할 보통 사람이 있을까.

더구나 우아한 여인이나 매사에 섬세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 남자가 동행한다면, 
매일 드나드는 집처럼 뻔한 행복을 탈출하고픈 욕망이 생긴다. 

 

 

 

 

 

영화는 정형화된 트로트 멜로디처럼 빤한다.

 

하지만 나는 중년의 우아한 애인에게 주구장천 추파를 던지며 연애하고, 

막 유쾌하고, 막 통속적으로 놀고 싶다.
밤낮으로 달려 여기저기가 부실한 똥차, 그러나 클래식한 녀석을 몰고 말이지.

개천에서 용이 나는 판타지가 끝났음을 체험했고,
반백 년 가깝게 산다 한들 남은 쪽이 더 적을 중년에게도 로맨스는 필요하다.

그들의 남모를 기원 앞에 나는,

극진할 그 로맨스 살아서 꼭 이루시라 합장한다.

 

 

 

 

 

 

노년에 돌아보는데, 한참 어린 중년을 로맨스 한번 없이 고리타분하게 살았다면
그 또한 가슴 치며 후회할 일 아닐까. 

 

애써 모른 척하면서도 어쩌면 한시도 잊지 않을 각자의 판타지.
나는 없다 말하지 못해서,

나는 누군가의 사랑이 설령 불륜이라 하더라도 그 선택을 존중한다.

 

그러니까 모두가 돌을 던져도 당신들의 사랑을 내가 존경합니다.

 

 

 

 

 

 

영화의 형식과 내용은 진부함에 가깝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이들에 몸과 마음이 지친 지금은

지나치게 상투적이고 작품성 따위 전혀 없어도 상관없었다.

감정이 메마를 땐 달달한 게 당긴다.

 

나이 들어 더 매력적인 다이안 레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칸느서 차를 돌려 파리로 향할 때

두루두루 극진하게 내리비치던 햇살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생활과 여행, 낭만과 현실 사이에 자리한 모순은 태평양처럼 넓고 깊다.

나는 그 사이에서 길을 잃거나 우여곡절을 겪는다.

 

로맨스는 커녕 평범한 사랑을 유지하는 데에도 엄청난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중년에 이르면 그렇게 영원한 사랑도 없고, 완전한 사람도 없으며,

이 세상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인다.

 

 

 

 

 

칸에서 파리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그곳에 도착한다.

갈아타고 가도 그곳에 간다.

처음엔 몰랐는데 불편한 고물차를 탄 여행도 너무 좋아서 최종 목적지가 다가올수록

그곳에 이르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사는 일의 신산함이 종잇장처럼 들릴락 말락 가벼이 펄럭일 때마다,

이왕 갈 바엔 혹여 가슴에 남을지 모를 후회를 화끈하게 탕진하며 가자는 다짐이 아니라

그렇게 산 세월이 나를 위로한다.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로맨스를 꺼내 베고 고단했던 몸을 기꺼이 부릴 테니까.

살아서 좋았고, 운이 좋았고, 자유해서 좋았다.

 

사랑 있어 좋았다. 오랜만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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