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바퀴 - 문인수 본문
바퀴 / 문인수
말복날 수륜리(水輪里) 유원지엘 갔다.
우리는 계곡물 콸콸거리는 어느 식당
숲 그늘에 자릴 잡았다. 물가 여기저기 네모난 살평상을 박아놓고, 그러니까
급류의 속도를 최대한 붙잡아놓은 집이다. 하지만 유수 같은 세월,
희끗희끗 달아나는 물살이다. 옆자리
살평상엔 중늙은이 아주머니 넷이 먼저 와 앉아 있다.
닭백숙에 소주도 두어 병 곁들여 조용히
복달임하는 중. 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으로 세월이라는 것이 흐를까, 계곡물 소리는
여기저기 커다랗게 엎딘 바위들도 연속, 험하게 잡아채 제 속도에 매단다. 그래도
그 소리 듣지 않으면 가지 않을 세월, 아주머니들은 음식상을 치우게 하고 각기
웅크리고 눕는다. 머리꼭대기에 발바닥,
머리꼭대기에 발바닥…… 친한 사이끼리 일생일대를 잇대며, 그러나 모르고 잠시
함께 굴러가는 것이다. 무엇이 물의 바퀴를 면할까, 몸 맡겨버린
이 편한 세월. 한 사람씩
살평상 각 면을 둥글게 구부려 누웠다.
문인수 시집 『적막 소리』중 <바퀴> 전문
배불리 먹은 이들이 최소 면적에서 순하게 잠을 잔다.
체형은 달라도 어머니 뱃속에서처럼 본래대로 웅크렸다.
누정(樓亭)과 달리 비 가림 할 지붕도 없는 평상에서의 달콤한 오수(午睡).
구불구불하게 만 파마 같은 생의 급류를 머리 아프게 통과한 여자들의 펑퍼짐함 퍼포먼스.
짐승도 제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지 않으면 순한데, 중년이 되면 그것이 슬픔임을 안다.
타인을 통째로 받아들이고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구르는 게 모난 세상에서 목숨을 이어가는 이치임을 안다.
덜컹거리고 멈칫대는 우여곡절을 거듭한 우리가 용케도 잘 굴러왔다.
우리의 평상시는 이렇듯 잇닿아 잘도 구른다.
그렇게 또 하루가 금방 간다.
젊을 때는 엄두가 나지 않던 세월이 서러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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