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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감천동 - 문인수 본문

합의된 공감

감천동 - 문인수

레니에 2018. 9. 17. 09:59

 

 

 

 

 

감천동 / 문인수

 

 

부산 감천항을 내려다보는 산비탈,

감천동 문화마을 골목길들은 참, 온통 애 터지게 좁아요.

그중에서도 거리 병목 같은 데 한토막은 어부바,

어느 한쪽 벽에다 등을 대고

어느 한쪽 벽엔 가슴을 붙여 또 하루 비집고 들고 나야

그러니까, 게걸음질을 쳐야 어디로든 똑바로 향할 수가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큰길가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두사람.

몸뻬 차림의 뚱뚱한 여자가

부스스한 머리, 키가 껑충한 사내더러 이죽거리며 잔뜩 눈 흘려요.

 

"술 좀 대강 처먹지!"

 

"왜, 내가 또 잠 못 들게 했나?"

 

게 골목, 그 통로를 경계로 둔 건너편 집과 건너편 집.

밤중,

사내의 헛소리며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친 여자.

여자의 지청구와 사내의 대꾸가

정류장에 나온 이웃 사람들 모두 낄낄낄 웃게 하지만 오랜 세월

임의롭게 지낸 남녀 간은 사실,

정작 붙진 않아요. 다만, 통하지요.

 

 

 

문인수 시집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중 <감천동> 전문

 

 

 

 

 

 

감천동은 부산에 있다.

달이 가까운 산비탈에 가난이 빼곡히 들어선 달동네다.

여기서 어떻게 살까, 싶은 그곳에 사람들이 생활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어느 때부턴가 사람들이 추레한 벽에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놓더니 '감천문화마을'이라 부른다.

'한국의 산토리니'라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낭만이 없다.

도토리 키재기하는 생활만 있다.

산아래를 그리워하며 산에 몸져누운 사람이 있다.

 

 

달동네 골목을 조금 들어가 보면 다리 아파 한숨이 절로 나오고

하수구 냄새에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관광객들은 이 길 저 길 돌아다니며 듣도보도 못한 가난을 훑고 지나간다.

좋은 배경을 찾아내 사진을 찍고 추억으로 저장한다.

 

가난도 좋은 구경거리다.

 

 

 

 

 

 

 

 

 

 

집들이 섶을 감고 올라야 사는 덩굴식물처럼 산비탈을 타며 자랐다.

평지에서는 고만고만한 삶이 옥탑방으로 밀리고 

그 평지에서 비탈로 옮겨온 이들은 엉뚱한 정상을 오른다.

 

 

산은 늘 사람에게 자리를 내준다.

지구에서 제일 높다는 에베레스트도 끙끙대며 기어오르는 사람은 당해내지 못한다.

당당한 산의 기세보다 구차한 사람 목숨이 지닌 기운이 훨씬 센 까닭이다.

 

 

감천동 산기슭에 뿌리내린 집 모양은 일정하지 않다.

자기복제 능력이 대단한 아파트와는 다르게 생김이 각양각색이다.

집 형태가 일정하지 않으니 그 속에 있는 방 또한 하나같이 다 다를 것이다.

 

각자의 형편 대로, 자기 생김 대로 살아가면서도

'바람불면 쓸쓸하겠다'는 속사정 정도는 알아주는 눈치가,

시에서는 다만 거침없이 통째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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