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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가을 아욱국 - 김윤이 본문

합의된 공감

가을 아욱국 - 김윤이

레니에 2018. 9. 15. 07:59


가을 아욱국 / 김윤이



방고래 딛고 어머니가 들여온 밥상

아욱국이 입안에서 달금하다

날마다 재봉틀 앞 허리 굽혀 앉은뱅이하다

가끔씩 펴고 일어나 가꾼 것들이다

동네 아낙들의 시샘 속에도 오가리가 들지 않고

푸릇하니 살이 올랐다

빈 북실에 실을 감듯, 두엄으로 길러낸 아욱잎엔

잎맥들이 팽팽하다

재봉틀 아래에서 올려진 밑실, 윗실과 합쳐져

손바닥 잎사귀마다 촘촘히 박혀 있다

날이 여물수록 어떤 마음이 엽맥에 배었다

누런 된장과 끓어올라 게게 풀어져

맛깔난 향 가득하다

얘야, 가을 아욱국은 사위 올까봐 문 걸고 먹는 거란다,

딸내미가 아귀차게 먹는 양을 보고 웃으신다

오랜만에 고봉밥을 비우며 바라보는 어머니 머리 위

올 굵은 실밥 길게 묻어 있다

어머니가 다듬은 아욱국은 

뜨겁게 내게 넘어오는데

숟가락 든 손끝은 바늘에 박혀 아득하다

딴청 피우듯 묻은 실밥을 떼어내고

얼결에 집어든 열무김치를 무뚝 베어문다

매옴하게 번져오는 가을이 깊다




김윤이 시집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중 <가을 아욱국> 전문








볕 밝은 남태평양에서

혹은 지중해에서 세상에 대한 냉소를 고집하기란 쉽지 않았다.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으며 인간에 대한 비관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이름모를 풀이 '내 속에도 있다'고 아기 손톱만한 꽃을 내밀 때,

그 야성에 철 모르며 어중간하던 생이 문득 싱싱해진다.



봄 가을 짧은 거야 일상사,

변화는 당연지사.


봄 숭어 가을 전어.


제때 심고,

제때 가꾸고,

제때 거둔다.


때를 알고 때에 맞추면 모든 게 맛나지만

그 일이 만만치 않다.



세월 가는데 뭔들 머물까.

활활 타던 불길과 연기가 방고래를 타고 서서히 빠져나간다.


당신이 살아 있는 나날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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