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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그 다음 날 - 뭉크 본문

합의된 공감

그 다음 날 - 뭉크

레니에 2018. 10. 19. 21:59

 

 

 

에드바르 뭉크 <The Day After>, 1984-1985, 115×152㎝, Oil on canvas.

 

 

 

 

 

그녀가 취했다.

지친 마음을 술 몇 잔에 헹궜을까.

남에게는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적나라하다.

 

술 마신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숙취가 찾아온다.

그 고통은 과음과 정비례한다.

함부로 분위기에 취해, 감히 삶과 사랑과 사람 따위를 사랑하며 자신을 가누지 못할 지경에 이르거나,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취기와 숙취 또한 깊다.

 

 

 

오슬로 국립박물관장이 이 그림을 구매할 당시에 박물관 후원자 중 한 사람이 따졌다.

"오슬로 국립박물관은 술 취한 여자가 쉴 곳이 아니다."

 

그러자 박물관장은 기자 회견을 열어 그림처럼 호소력 있는 언어로 반박했다.

"이곳이 쉴만한 곳인지 아닌지는 그녀가 깨어나면 물어보겠다.

그러나 지금은 자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녀가 있는 것이 미술관의 영예가 될지 치욕이 될지 아직 판단하기 이른 시각이다."

 

 

종종 엉망인 사람의 인생에서 과연 눈부시게 좋은 날은 얼마나 될까.

생활을 거세한 인테리어 잡지의 단정하고 평온한 실내와 잘 정돈된 호텔 침대도 사람 손이 닿는 순간 엉망이 된다.

사는 동안 끊임없이 발전만 거듭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적잖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나는 짐작한다.

 

사람은 저마다 규칙 몇쯤은 가지고 세상살이를 헤쳐나간다.

그리고 사람은 때로 망가지지 않기 위해 망가진다.

 

허겁지겁 한입에 들이 삼킨 긍정은 반드시 역류한다. 

술이 술을 마시듯 삶이 삶을 산다.

그런 갈지자 행보에서 사람이 균형을 잡으려면 오히려 몇 번은 널브러져야 한다.

 

 

다음 날 눈 뜨자마자 후회가 밀려올지 모른다.

머리는 아프고 속이 쓰릴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그 정도의 통증은 삶의 일부로 껴안고 살아간다.

 

아무튼 그녀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뻔한 소갈머리로 오지랖 넓히며 입방정 떨지 말고, 다만 그녀가 잠 깨지 않게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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