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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발끝 살며시 아껴 걷는 11월 본문

잡담 or 한담

발끝 살며시 아껴 걷는 11월

레니에 2020. 11. 7. 08:41

#1

카메라 둘러메고 재개발 예정 구역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낡은 다세대주택 외부 계단을 오르는 택배기사가 보인다.

자기 등짝보다 더 큰 짐을 지고 2층을 지나 3층으로 오르던 그가 갑자기 주저앉더니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일어나지 않는다.
몇 분이 흐른 뒤 그는 무슨 결심이라도 선 양 1층으로 내려간다.

 

짐 두 개 그곳에 더 있다.

그는 심한 교통 체증에 걸린 차량처럼 느리게 느리게 나머지 짐을 마저 옮긴다.

그 풍경을 흐지부지 지켜보는 나는 점심을 커피 한 잔으로 건너뛰었는데도

뭐에 체한 듯 속이 답답하다.
아무래도 아무나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쯤 건네야 숨통이 트일 것 같다.

 

 

 

 

#2

전날 주문한 통영 굴이 도착해서
굴국을 보글보글 끓였다.

갓김치 담글 때 짠맛 순화용으로 넣어둔 무 조각을 꺼내 물에 헹구어 
불린 미역 약간, 두부와 함께 나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냉장고를 스캔하니 청양고추가 없어서 페페론치노 5개를 잘게 다졌다.
부추와 홍고추, 조미료 약간 곁들여 내 앞에 내어놓았다.

 

 

 

 

#3

11월이라고 낮이 점점 늦게 문을 열고 일찍 닫는다.

한쪽에선 바싹 다가온 겨울을 나려 나무가 제 몸의 물기를 짜내고

잎이 나무에서 멀어진다. 
나는 목 가까이 이불을 끌어당긴다.

김장배추 서리 맞으며 속이 꽉 들어차고, 단풍이 보기 좋아 실없이 웃는 11월.
다 괜찮은데 아직도 철이 덜 든 내가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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