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동대구역에서의 혼잣말 본문
부산서 출발한 KTX가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한 무리의 사람이 올라 타자 열차 안 분위기가 금세 달라진다.
디테일을 가차 없이 뭉개거나 생략한 트럼프의 단문 같은 짤막한 언어가
동대구역에 도착하기 전과는 전혀 색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도통 눈치도 없이 자기 할 말은 다하고 보는 그들은 말을 툭툭 내던지는데,
그들의 말과 행동은 걸리거나 막힘이 없지만
승객들은 파김치처럼 톡 쏘는 자극성이 강한 억양에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자리를 잡은 그들은 저렴한 섬네일과 언어를 마구 쏟아내는 정치 유튜브를 이어폰도 없이 보더니
여러 사람 들으라는 듯 단호하게 내뱉는다.
"문재인 그 개**는 감옥에 가야 돼!"
어느 편에 선 사람들의 편협한 주관성과 옹졸한 일관성이 벌이는 처연한 소동에서
나는 내가 사는 세계의 개념을 묻지 않고도 알아차린다.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이유가 꽤 단순한 것이겠구나.
내가 어떤 삶을 살든 나도 이 나라에 사는 두 명 중 한 명에게는 필경 '그 개새끼'에 불과하겠구나..."
'잡담 or 한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갓 튀겨낸 튀김 같이 바삭한 새벽 (0) | 2020.12.20 |
---|---|
12월, 슴슴한 국물처럼 누긋하다 (0) | 2020.12.17 |
한남동 (0) | 2020.11.14 |
발끝 살며시 아껴 걷는 11월 (0) | 2020.11.07 |
꽃무릇 미치도록 핀 여기 선운사, 다녀갑니다 (0) | 2020.09.24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