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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갓 튀겨낸 튀김 같이 바삭한 새벽 본문

잡담 or 한담

갓 튀겨낸 튀김 같이 바삭한 새벽

레니에 2020. 12. 20. 08:06

1.

주 3회 하던 스피닝을 1주일 내내 했다.

스핀 바이크를 고강도로 미친 듯이, 뜨겁게 탔더니 허벅지는 딴딴해졌는데

어제는 몸이 하루 종일 께느른하였다.
무릎도 시큰해서 나는 만사를 제쳐 두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럴 땐 '잠'만이 심신기능 저하상태에 빠진 나의 전부를 바꿔놓는다.
나는 불을 끄고 수면안대를 하고 누웠다.

곤히 잠든 고양이.
모로 누워 자다가 무슨 꿈을 꾸는지 앞발을 몇 번 꼼지락거리다

아예 넘늘어진 개처럼,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도 깨질 수 있는 연약하면서도 견고한 평화 같은 단잠을 잤다.



 

 

2.

새벽에 일어나선 여느 때처럼 커피머신 고압펌프 작동음으로 정적을 깨고
되직한 스파게티에 물을 조금 부어 걸쭉하게 만들지만 그 농도는 묽지 않게 조절한 음악을 듣는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팍팍한 마음에 기름을 좀 쳐서 부드럽게 돌아가게 한다. 

그가 남긴 곡은 음식의 흥을 돋우는 애피타이저 같이 싱싱하고 상큼하다.
뒤끝도 없고, 앞끝도 없으며 가시지 않을 앙금도 없이
다만 근사한 생각이 떠오른 아이가 오른손에 꽃을 들고 깡총깡총 뛰어가는 듯하다.


 

 

3.

태풍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한밤중을 달려
태풍의 길목에 있는 항구 도시에 갔었다.

 

파도는 방파제를 만나 사방으로 치솟고 비바람은 미친듯이 불었는데,
태풍이 갓 지나간 새벽 바다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장엄해서 그야말로 숨은 비경이었다.

그 기막힌 여름도 그저 지나쳤을 뿐인 별 인연이랄 것도 없는 시간이 되어 동짓날 밤을 유유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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