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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살아서 챙기는 좋은 끝, "죽고 난 뒤의 팬티" 본문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미터만 가까워져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오규원 <죽고 난 뒤의 팬티 >전문
팬티가 떡하니 제목에 올라앉았다.
뻔한 이야기로 침 튀기지 않고 속옷 한 장으로 속내를 털어놓을 셈인가.
교통사고로 이승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뻔한 시인은
자신이 죽으면 그의 몸이 남의 손에 맡겨질 것을 아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그를 보호하던 겉옷이 먼저 벗겨지고
제일 마지막에는 달랑 팬티만 남을 것이다.
아무것도 입지 못한 몸이 노골적으로 다 드러난 사이에,
남들이 맘대로 몸뚱이 중심부에 덩그마니 남은 팬티 꼴을 보고
왈가왈부 터무니없는 인생값을 매긴다면,
그것은 우습기보다 심각한 일이다.
화려한 세상 무대의 조연은 고사하고
'지나가는 행인 1'에 불과할지라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끝이 좋아야 그나마 좋은 거라고
뒤탈이 없게끔 단단히 마무리하려는 적나라한 속내가 내 안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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