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Show Must Go On 본문
#1
누가 봐도 변방의 삶이다.
도시에 살며 타인의 욕망을 만나고 그 욕망을 욕망하며 사는 나에게
사진 속 두 남녀는 가난하고 가난해서 의미를 잃은 외곽,
사람들이 더는 찾지 않아 지도에서 지워진 깊은 오지 같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며 환갑 진갑 다 지났을 남녀에게 나는 묻는다.
남자가 들꽃 한 움큼을 꺾어다 여자에게 건네고 담배 한 개비 물듯 꽃 하나 입에 물었는지.
아니면 여자가 꽃을 따서 남자 입에 한 송이 물려주고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를 뻔했다"는 눈빛으로 허름한 어깨에 기댔는지를.
본래 서로 짝이 아니었을 짝짝이 단추는 누가 달았는지를.
살다 보면 사는 일의 거대함과 왜소함,
이 세상에 오고 가는 일의 사소함,
권력층의 교활함과 집요함,
소시민의 소심함과 비열함에 대해서 입을 다물되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는 문득 목이 메는지를.
#2
"막내가 느닷없이 와서 가족여행 가자고 하는데,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제.
차갑데, 내 얼굴을 ㅇㅇ이 내 새끼 뺨에 대는디 너무 차갑데."
2023년 4월 7일.
56세 자식을 가슴에 묻은 86세 여인이
질지도 되지도 않은 밥 한 공기를 제 슬픔 제가 책임지듯 다 비운다.
https://youtu.be/-3ZVImZHF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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