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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스며드는 것 - 안도현 본문

합의된 공감

스며드는 것 - 안도현

레니에 2017. 11. 22. 16:59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을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중 <스며드는 것> 전문.

 

 

 

 

 

 

 

더는 꽃게를 먹을 수 없었다.

시에 배인 외면하기 힘든 울음 때문이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그 절망을 불 끄고 이불 덮듯 보듬으며

잔인한 생과 불화하지 않는 모습에

입맛은 지워지고 

하찮고 사소한 것들의 불행이 돋아났다.

 

우리 쪽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항시, 숱한 것들의 낙담과 희생이 있었다.

 

갑이 을을,

혹은 을이 갑을 수렁에 몰아넣는 일이 흔할 때

우리가 새롭게 발견해 지켜야 할 게 꽃게의 알만은 아닐 것이다.

 

 

너른 의미에서 보면 비극적 상황에 관한 시인의 인식은

취업 청탁이나 일부 대기업 노조의 일자리 세습 등과도 맞닿는다.

 

알탕과 명란젓과 알이 꽉 찬 꽃게를

게걸스럽게 훑어 뱃속을 채우는 일은 세상의 미래를 먹어치우는 행위다.

미래의 씨를 말리며 나의 쾌락을 즐기는 일이 우리 주변의 절망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내 입맛에 맞게 간장을 쏟아부어 살려고 발버둥치는 어떤 것들의 숨을 끊고 아예 씨를 말리지나 않았는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산 지난날이 불에 닿은 듯 뜨끔하다.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과 연결되어 있다면

행복에 대한 열망이 클수록 누군가의 불행의 크기도 커질 것이다.

 

누구나의 몸속에는 자기 행복에 대한 알찬 욕망이 있지만,

타자가 덜 불행해지는 데에도 조금씩 힘을 보태

우리 사회의 취약해진 존립기반을 보강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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