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홍어 - 이정록 본문
욕쟁이 목포홍어집
마흔 넘은 큰아들
골수암 나이만도 십사년이다
양쪽 다리 세 번 톱질했다
새운눈으로 웃는다
개업한 지 십팔년하고 십년
막걸리는 끓어오르고 홍어는 삭는다
부글부글,을 벌써 배웅한
저 늙은네는 곰삭은 젓갈이다
겨우 세 번 갔을 뿐인데
단골 내 남자 왔다고 홍어좆을 내온다
남세스럽게 잠자리에 이만한 게 없다며
꽃잎 한 점 넣어준다
서른여섯 뜨건 젖가슴에
동사한 신랑 묻은 뒤로는
밤늦도록 홍어좆만 주물럭거렸다고
만만한 게 홍어좆밖에 없었다고
얼음 막걸리를 젓는다
얼어죽은 남편과 아픈 큰애와
박복한 이년을 합치면
그게 바로 내 인생의 삼합이라고
우리집 큰놈은 이제
쓸모도 없는 거시기만 남았다고
두 다리보다도 그게 더 길다고
막걸리 거품처럼 웃는다
이정록 시집 『정말』 중 <홍어> 전문.
여자는 행복을 단념한 적이 없다,
행복이 여자를 단념했을 뿐.
'개업한 지 십팔년하고 십년'
온갖 주정을 상대하며 '곰삭은 젓갈'이 된 여인이 모르는 세상 속맛 없을 테지만,
정작 제 행복맛은 맛보지 못했다.
암모니아가 분해되면서 풍기는 홍어 특유의 삭힌 맛은 요소 성분에 기인한다.
홍어가 짜디짠 소금 바다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다.
곧 겨울, 구둣발 소리 한번 없이 바다를 가만히 걷던 홍어들이 줄줄이 주낙에 낚여 바다를 떠날 때다.
한 번 낚싯바늘에 입이 꿴 홍어는 잡아끄는 대로 배에 올려지고
숨을 놓기 전에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입술을 몇 번 달싹댈 것이다.
억지로라도 되는 일이면 뭔들 안 했을까.
홍어는 웃는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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