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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아버지의 욕 - 이정록 본문

합의된 공감

아버지의 욕 - 이정록

레니에 2017. 11. 30. 06:59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

어릴 적에 들은 아버지의 욕

새벽에 깨어 애들 운동화 빨다가

아하, 욕실 바닥을 치며 웃는다

 

사내애들 키우다보면

막말하고 싶을 때 한두 번일까마는

아버지처럼, 문지방도 넘지 못할 낮은 소리로

하지만, 삼십년은 너끈히 건너갈 매운 눈빛으로

'개자식'이라고 단도리칠 수 있을까

 

아이들도 훗날 마흔 넘어

조금은 쓸쓸하고 설운 화장실에 쪼그려 제 새끼들 신발이나 빨 때

그제야 눈물방울 내비칠 욕 한마디, 어디 없을까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나는

"광천쪽다리 밑에서 주워온" 고아인 듯 서글퍼진다

 

"어른이라서 부지런한 게 아녀

노심초새한테 새벽잠을 다 빼앗긴 거여"

두 번이나 읽은 조간신문 밀쳐놓고 베란다 창문을 연다

술빵처럼 부푼 수국의 흰 머리칼과 운동화 끈을

비눗물방울이 잇대고 있다

 

 

이정록 시집 정말 중 <아버지의 욕> 전문

 

 

 

 

 

 

 

 

없던 살림이 별안간 나아질 리 없고,

앞날은 안심이 안 되니

비방 없고, 요령 없고, 극성 없는 당신은 새벽마다 앓아누웠을 테지만,

딸린 자식들은 자느라 바빠 상태가 어떠신지 한 번도 문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버지 한목숨이 버티며 사는 데

'개자식'이 큰 구실이 되었으니 저는 효자입니다.

 

 

아버지.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이 

재까닥 밥벌이하느라 밥에 꼬리 치는 재간을 갖춘 진짜 개자식이 되었습니다.

 

'개자식'을 에둘러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이라고 하셨지요.

평생 밥그릇 내던지지 못할 대물림 개 팔자가 차마 안쓰러우셨던 거지요.

생이 기우뚱하니 비로소 누가 들을까 몰래 한숨 쉬던 아버지 모양 됩니다.

 

못마땅하셔도 

오죽했으랴, 여기십시오.

 

개자식, 아니 '불쌍한 내 새끼' 는 별 탈 없으니 염려 마시고

무덤에서 무덤덤하게 주무시고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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