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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짐 - 이정록 본문

합의된 공감

짐 - 이정록

레니에 2017. 12. 1. 14:59




기사 양반,

이걸 어쩐댜?

정거장에 짐 보따릴 놓고 탔네.


걱정 마유. 보기엔 노각 같아도

이 버스가 후진 전문이유.

담부턴 지발, 짐부터 실으셔유.


그러니께 나부터 타는 겨.

나만 한 짐짝이

어디 또 있간디?


그나저나,

의자를 몽땅

경로석으로 바꿔야겄슈.


영구차 끌듯이

고문고분하게 몰아.

한사람 한 사람이

다 고분이니께.



이정록 시집 『어머니학교』 중 <짐> 전문












입 달린 사람이 주는 기쁨이 있다.


살가운 말 한마디에도

산다는 것에 대한 엷은 안도감이 느껴진다.


낡아빠진 버스와 늙은 승객이 이제 막 길을 떠날 참이다.

그들은 서로를 푸대접하지 않는다.

삶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슬픈 예감이라는 관문(關門)을 익살과 해학으로 통과한다.



삶을 등지진 않았으나

급속하게 진화하는 세상에서 뒤처지는 것들.

버려지는 것들.

딱 잘라 짐이라 취급되는 것들을 내버려두지 않고

기꺼이 버스는 후진한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려 서로를 밀치느라 바쁜 우리가 

그들을 상스러움과는 다른 표현으로 대할 때,

문득 세상이 예뻐 보인다.




고분 같은 어머니가 고민하신다.

마지막 일이 남았다며 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챙기신다.


"새끼들한티 짐 안 되게 자는 데끼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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