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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엄니의 남자 - 이정록 본문

합의된 공감

엄니의 남자 - 이정록

레니에 2017. 12. 2. 08:59

 

 

 

 

 

엄니와 밤늦게 뽕짝을 듣는다

얼마나 감돌았는지 끊일 듯 에일 듯 신파연명조다

마른 젖 보채듯 엄니 일으켜 블루스라는 걸 춘다

허리께에 닿는 삼베 뭉치 머리칼, 선산에 짜다 만 수의라도 있는가

엄니의 궁둥이와 산도가 선산 쪽으로 쏠린다

이태 전만 해도 젖가슴이 착 붙어서

이게 모자(母子)다 싶었는데 가오리연만한 허공이 생긴다

어색할 땐 호통이 제일이라, 아버지한테 배운 대로 헛기침 놓는다

"엄니 저한티 남자를 느껴유? 워째 자꾸 엉치를 뺀대유?"

"미친놈, 남정네는 무슨? 허리가 꼬부라져서 그런 겨"

자개농 쪽으로 팔베개 당겼다 놓았다 썰물 키질소리

"가상키는 허다만, 큰 애 니가 암만 힘써도

아버지 자리는 어림도 읎어야?

신파연명조로 온통 풀벌레 운다.

 

 

이정록 시집 『정말』 중 <엄니의 남자> 전문.

 

 

 

 

 

한 몸이었다가

두 몸으로 나뉘었던 살붙이가

잠시 한 몸이 되어 블루스를 춘다.

 

어머니는 여태 잊지 못한 사라진 것을 끌어안고,

아들은 사라져 가는 몸을,

엉덩이 쭉 빠져 멀어지려는 것을 스을쩍 깊이 당겨 안는다.

 

태아가 뱃속에서 들었던 엄마 심장 박동이 뽕짝 박자가 되고

엄마가 느꼈던 태동은 스텝이 된다.

 

 

생은 술 없이도 알짝지근하게 취할 만큼의 매혹이었으나

어설픈 초짜들의 스텝은 늘 꼬이기만 했다.

우리는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이 춤사위는 벌써 다가온 이별 연습.

입에 착 들러붙는 뽕짝처럼 어느새 자욱이 엉겨붙는 난감한 말들을

서로는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쓴다.

 

스텝을 제대로 익혀서 그럴싸하게 추고 싶은데

점점 낮아지는 어머니는 삶의 유한성을 수용하는 중이다.

어머니의 꿈도 머잖아 신데렐라의 그것처럼 자정이 되면 끝날 것이다.

 

손 내밀어 맞잡듯 붙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서로가 안다.

 

 

드넓은 이승의 강에서 나룻배 흔들리듯 블루스를 춘다.

한 번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두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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