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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본문

합의된 공감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레니에 2018. 1. 14. 22:59



영화는 언뜻 보면 B급 패러디물 같다. 

만화의 '데포르메'처럼 연출은 의도적으로 과장되었다.


그동안 많은 영화가 차용한 "어서와" "다녀왔어요" 의 결말로 매듭짓는 '타다이마 클리셰'는

선하게 살면 천국이나 윤회가 기다린다,는 종교적 형식과 유사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인간으로 사는 일의 아이러니와 쓸쓸함을 독창적인 형식으로 보여준다.

 

삶에는 마치 금수저처럼 먼저 가지면 매우 유용한 조건이 있다.

또한 먼저 버려야 하는 것도 있는데,

선입견과 편견의 적용을 조금 늦추니 정말 괜찮은 영화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인생에 담긴 비극의 원인은 사랑의 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형식으로 사랑 받지 못하는 데에 있다.


마츠코도 그랬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미성숙한 제자에 의해 틀어지기 시작한 인생이 

미성숙한 아이들에 의해 마감될 때까지 살아가야 했다.


마츠코의 마지막도 유달리 인상적이었는데, 

삶이 부모가 자식에게 투영하는 환상을 닮은 미몽이라는 무서운 조건하에 놓여 있고 

그 기대가 언제든지 배반당할 수 있음을 감독이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이, 신인 까닭은 무엇일까?

신이 세상을 만들었고 생살여탈권을 쥔 채 그 어떤 오류도 없는 전지적 관점에서 

세계를 분별하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인간에 대한 환멸에도 불구하고

그가 할 줄 아는 게 사랑밖에 없어서다.



삶이 이유 없이 풍성하거나 초라하다면 돌고 도는 돈 때문일 개연성이 크다.

또한 삶은 우리가 누군가의 인생에 일군 사랑 덕분에

총체적으로 허무해지지 않는다.



되짚자면 인간은 예수에게 온갖 모멸을 다 가했다.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들이, 그들에게 충고하는 마츠코에게 일격을 가한 것처럼

세상이 사랑의 가치를 모욕하는 행태도 점점 더 과격해질 것이다.


아울러 예수가 우리에게 천국을 약속한 능력자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그를 사랑할까, 라는 의문도 여전하다.

할 줄 아는 게 사랑밖에 없었던 그녀는 사랑을 사랑했고

마츠코의 삶을 동의하지 않는데도 그녀를 싫어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도, 예수와 마츠코에게는 덜 사랑한 자가 뒤늦게 흘릴 통한의 눈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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