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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모든 시작은 불시착 - 마카담스토리 본문

합의된 공감

모든 시작은 불시착 - 마카담스토리

레니에 2018. 2. 1. 09:59

대개 영화와의 만남은 일회성으로 끝난다.

간혹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보는 영화가 있긴 하지만

그건 정말 아주 드문 경우다.

 

어쩌다 들춰보기는 해도 <안나 카레니나>같은 명작을 두 번은 읽지 못하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그래도 단 한 번의 만남만으로 깊게 각인되는 영화는 있게 마련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은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마카담스토리>는 그런 영화다.

 

다른 인종, 다른 언어, 다른 음식, 다른 세계.

그 낯섦을 수용하는 장면이 따스했다.

 

<마카담스토리>는 옴니버스영화처럼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개별세대의 집합체인 아파트가 그렇하듯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한덩어리로 보인다.

극을 이끈 배우들도 같은 영화에 공존하지만 서로 만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영화는 덜컹거리거나 단절됨이 없다.

오히려 화면 곳곳에 유머를 펼치는 능력을 발휘하면서

부드럽고 고급스럽게 전개된다.

 

아랍계인 여자는 프랑스에 이방인의 자격으로만 허용되었고

사회 규범에서 일탈한 아들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우주비행사는 정상 궤도에서 이탈했다.

다른 이들도 각자의 고독에 고립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개방성을 조금씩이나마 유지하는 데 동의했다고

영화에 선명하게 찍혀있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지만 늘 혼자인 소년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상의 범주는 아니다.

한물간 여배우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자기가 반복하고 싶은 호시절만 반복 재생할 뿐이다.

 

변두리에 자리한 마카담처럼 그들도 주류에서 한참이나 동떨어졌다.

 

사람이 타인을 만나 종종 상처받는다.

그 반면에 사람의 어떤 부분은 다른 사람과의 인연으로 더 나아진다.

 

 

 

 

<덩케르크>에 비하면 매우 좁은 화면비를 채택한 영화지만

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여백이 넉넉하고 신과 사이도 헐겁지 않다.

 

어수룩해 보여도 섬세한 미학으로 연출된 몇몇 신은 마음을 따스하게 데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사랑의 세계에 전처럼 푹 빠져들 수 없다.

사람이 사랑에만 헌신할 수 있는 시기는 우리네 삶에서 아주 짧은 한 시절 뿐이다.

아무래도 나이듦에 따라 사랑에 앞서 고려할 요소가 점점 많아진다.

좋게 말하면 나름대로 성숙하게 사회화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만큼 타산적이고 약은 인간으로 진화한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무슨 일이든 사력을 다해 끝까지 가겠다는 야무진 생각보다는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보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런 생각이 썩 훌륭한 건 아니지만, 왠지 그렇게 하면 모든 일이 한결 가뿐하고

하늘 푸른 낮과 밤하늘에 들어찬 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개가 무량해진다.

 

 

 

 

그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운명 같은 사랑을 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말이다.

물론 잊지 못할 사랑을 이미 경험했다면 더 바랄 건 없다.

그 정도면 충분히 운이 좋은 경우니까.

 

어느새 피부나 마음이 탄력을 잃고 주름이 쪼글쪼글 잡힌다.

기미도 생긴다.

 

외롭지 않은 것처럼 살아도

외로움이 거의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말이듯,

나는 그것을 내 몸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정상 궤도에서 점점 벗어난다고 해서 위축되지는 말자.

 

우리가 움츠러들면 불행이 더욱 기세등등하고

우리가 당당하면 거센 불행도 쪼그라든다.

 

별 기대 없이 보다가 "어, 이거 봐라!" 하고

자세를 고쳐앉는 영화가 있다.

시들해진 인생에도 아직 어느 정도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쫄지 마! 알고 보면 별거 아니야!"

개운한 엔딩에는 그런 격려가 발화되지 않은 대사로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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