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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본문

합의된 공감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레니에 2018. 2. 24. 19:59

 

 

 

 

 

 

 

 

 

영화는 아무도 오래는 머물지 않는 공항에서 불일치를 드러내며 시작한다.

 

불특정 소음이 가득한 곳에서 여자는 남자를 부르지만

방금 도착한 남자는 자기 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릴 뿐 여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유리벽이 있어서 볼 수는 있어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는데,

이혼과 불리의 불가피성이 그렇게 남자와 함께 나타난다.

아무튼 남자는 당연하게 따라 나올 줄 알았던 수화물을 잃어버렸다.

 

 

 

 

 

 

 

 

 

그러면서 영화는 과거를 뜻하는 타이틀을 자동차 와이퍼가 지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와이퍼는 바깥에서 작동한다.

예측하지 못한 날씨처럼 삶도 내부보다는 낯선 것들이 가득한 외부에서

삐걱대고 부딪히고 돌보고 살피며 전개된다.

 

영화는 진행과정에 적잖은 난관이 있음을 슬쩍 내비치며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주차장에서 후진하던 마리는 예상하지 못한 개입에 화들짝 놀란다.

앞으로 있을 그녀의 반추가 쉽지 않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전진이 쉬운 것도 아니다.

우중 유리창은 불투명하고 시야는 가려진다.

제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좀 더 빠른 속도로 벗어나려는듯,

손목 통증을 핑계로 그녀는 남자에게 기어 변경을 부탁한다.

 

 

 

 

 

 

 

 

 

그들이 도착한 곳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페인트 작업 중인 집은 매우 어수선하다.

 

도장 작업은 대개가 기존 칠을 사포로 여러 번 갈아 흔적을 말끔하게 지우는 작업을 선행한다.

입자가 거친 사포로 시작해 부드러운 사포로 매끄럽게 다듬은 다음 

표면에 새로운 페인트를 바른다.

 

그 과정이 생략되면 마감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자의 집은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

 

마리와 사미르는 과거와 감정을 서둘러 덧칠하지만 둘 다 거칠고 서툴다.

 

 

 

 

 

 

 

 

 

 

 

감독은 플래시백 없이 과거를 조명하고

배경음악의 개입을 차다한 채 여자를 중심으로 벌어진 관계의 파장을 관찰한다.

 

그리고 반전은 그 크기가 아니라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치밀함에 있음을 보여준다.

 

 

 

 

 

 

 

 

 

 

 

 

앙금과 흉터가 없던 상태로 돌아가려는 듯 세제를 마셨던 사미르의 부인은 

새하얗게 표백된 병실에 놓여 있다.

 

마리는 약국에서 일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치료 약물은 구하지 못한다.

사미르 또한 세탁소를 하면서도 자기 삶에 짙게 묻은 얼룩을 제거하는 데는 실패한다.

'아메드'도 프랑스에 머물지 못하고 창고에 방치되었던 캐리어를 든 채 이란으로 돌아가야 한다.

 

빛의 방향에 따라 들락날락 하지만, 모든 물체는 제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한쪽으로 기울어 넘어지는 도미노 게임을 하듯 

먼저 등장한 인물들부터 순차적으로 쓰러뜨리며 진행된다.

 

엔딩에서 사미르가 아내의 침대 경사를 조정해 상체를 세운다.

그녀도 과거에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연속성이 발생하는 도미노 게임에 참여했다.

 

그 연쇄 작용 속에서 저마다의 삶이 고유한 단편으로 이해되거나

타인과 전혀 무관한 임의의 개체일 수는 없다.

 

 

 

 

 

 

 

 

 

결말에 이르러 사미르는 향수를 뿌린 채 아내의 반응을 살핀다.

부인은 마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매듭지어 붙잡듯 사미르가 내민 손을 잡는다.

 

이 장면은 "손목이 아프다"고 했던 마리의 초반부 대사와 연결된다.

그녀들은 각자의 상태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악력으로 현실을 붙잡고 있다.

 

 

 

 

 

 

 

 

 

 

사는 일은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과거에 우리는 생각보다 부주의했다.

그 부주의로 인해 우리는 누군가를 괴롭혔고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우리가 들고 다녀야 하는 그 짐은 파손된 채 뒤늦게 도착한다.

 

 

 

 

 

 

 

 

 

 

 

우리가 빤히 보이는 사실에 대해서도 얼마나 다르게 반응하는

복잡한 유기체인지를 영화는 오프닝과 엔딩을 통해 차가운 병실 컬러만큼 선득하게 보여준다.

 

 

영화 도입부에서 '마리'가 주차장을 출발할 때 "뭐 하는 거야!" 라는 소리를 듣는데,

그녀가 운전하는 차는 빌린 차였다.

 

우리는 자기 소유물이 아닌 타인이라는 렌터카를 사용해 인생을 주행한다.

그 차는 언젠가는 반납해야 하기에 부주의해서는 안 된다.

 

온전한 상태로 돌려줄 수 없는 사고 차량이 되어 폐차를 기다리는 게

사미르 부인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가 결말에 이르러서도 못내 답답한 까닭은

사미르를 붙잡던 아내의 악력 같은 회한이 우리 인생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테면 "이미 지난 일"이라며 회피와 도피 혹은 망각을 갈망하는 우리를 이도 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놓인

사미르의 처지로 붙들며 결코 무효화 될 수 없는 우리의 부주의를 

우리가 부인할 수 없게끔 제시하고,

복잡하게 꼬인 해묵은 감정들과의 소모전이 일거에 사라지는 마법이 현실에는 부재함을

친절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미르가 더는 손댈 수 없이 스러진 과거를 무력하게 마주하듯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는 마음 바꿔 살고픈 응답을 절망적인 몸부림으로 표현한다.

 

그 어긋남과 비켜섬과 불일치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지 않으냐고 영화가 대놓고 물으니,

한 침대를 오래 공유한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가 낳은 자식과도 한마음이 되는 데에 실패한 우리의

대답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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