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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토지> 길상의 말 본문

합의된 공감

<토지> 길상의 말

레니에 2018. 3. 28. 21:31






"도시 은혜란 뭡니까? 양반들 먹고 남은 찌꺼기를 던져주는 게 은혭니다. 상놈 노비들은 먹다 남은 찌꺼기를 얻어먹으면서 

감지덕지 은혜를 받는 게지요. 

나는, 나는 말입니다. 돌아가신 마님을 그렇게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괴팍한 서방님도 그렇게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서방님은 어린 마음에도 영악한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은혜를 준다거나 갚으라거나 그런 생각은 안 했던 분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분한텐 슬픔 같은 것, 그렇습니다. 한이라 하는 게 좋겠지요.

이 세상 아무도 믿지 않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님도, 그 어른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러러 뵙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나에게 글을 배우게 하시고······어릴 적에는 나는 그것을 크나큰 은혜로 알았지요.


그러나 그건 정(情)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보내는 정 말입니다.

상전이 하인에게 베푸는 은혜,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 어른은 웃으신 일이 없었지만 웃음보다 더 정을 느끼게 하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 어른 눈에는 자기 자신을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빛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슬퍼할 줄 모르고 불쌍하게 생각는 마음이 없이 어찌 남을 위해 슬퍼하겠습니까.

배고파본 사람만이 배고픈 것을 알듯이 말입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픔을 알듯이 말입니다.


해서, 그, 그렇지요 나, 나도 그렇습니다.

그분을 불쌍히 여기고 정을 느낀 겁니다. 애기씨의 경우에도……"



<토지 2부 1권>








길상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렇다.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대립관계나 사회적 계급으로 분리되기에 앞서 

이 세상에 다만 사람이라는, 생명이라는 공통된 형식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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