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토지> 금녀 본문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큰 약점인가.
절망에서의 탈출 뒤에 온 희열이란 또 얼마나 서글픈 찰나인가.
희망이 일렁이는 금녀 가슴에는 뜻하지 않았던 조바심이 아프게 저 바다의 파도가 방천을 치듯 쉴 새 없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빼앗길 그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겐 불안이 없다.
지금 금녀가 가져보는 앞으로의 자기 운명에 대한 기대와 흥미가 과연 희망적인 것인지
그 어떤 실마리도 잡아보지 못한 채 방향도 알지 못한 채 악몽 속에 허덕여온 여자는 희망 그 자체를
겁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어쩌면 금녀에게는 절망 그 자체가 삶이었었는지 모른다.
순간 불꽃 튀기듯 뻗치어온 절망과의 대결,
그 긴박한 찰나 찰나가 삶의 증거였었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서러움이나 근심이나 불안은 절망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온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토지 2부 1권 중에서>
친아버지가 술집에 팔아버린 금녀.
금녀의 불운은 그녀가 노력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데 삶은 김두수와 같은 악독한 인물이 그녀를 끈질기게 짓밟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허용한다.
금녀는 이름과 신분을 바꾸며 자신을 옭아맨 올가미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위해 고민하고 분투한다.
제 한 몸 건사하며 먹고살기에만 바빠야 하는 운명인 금녀도
참고 살다보면 삶을 사랑하게 될까.
삶은 으레 일단 해보라고 쉽게도 말한다.
그러나 작가는 희망이라는 어설픈 말에 속기보다는,
아니 그런 말에 귀 기울일 틈도 없이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절망과 끊임없이 대결하는 태도야말로 삶에 어떻게든 뿌리내리려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동력 아니겠냐며 다독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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