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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토지> 공월선과 이용의 마지막 대화 본문

합의된 공감

<토지> 공월선과 이용의 마지막 대화

레니에 2018. 3. 30. 23:14

 

 

 

 

 

 

"임자."

얼굴 가까이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떤다.

 

머리칼에서부터 발끝까지 사시나무 떨듯 떨어댄다.

얼마 후 그 경련은 멎었다.

 

"임자."

 

"야."

 

"가만히,"

 

이불자락을 걷고 여자를 안아 무릎 위에 올린다.

쪽에서 가느다란 은비녀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내려다보고 올려다본다.

눈만 살아 있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같이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토지 2부 4권 중에서>

 

 

 

 

 

임종을 앞둔 월선과 용이의 마지막 대화다.

 

월선은 소설 <태백산맥>의 소화처럼 무당의 딸이다.

천한 신분이라는 오로지 그 이유로 용이와 맺어지지 못했다.

 

소화가 고문을 받아 유산하는 고통 속에서도 하염없이 정하섭을 기다리듯

행복에서 겉돌고 어긋나기만 하는 월선의 삶도 안타까웠다.

 

월선은 소화보다는 내성적이고 또한 소화처럼 옥중에서라도 자식을 낳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한이 없다는 말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뜻일 게다.

 

나루터에 주저앉아 용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의지할 곳 없는 불안한 마음에 

솔잎을 하나씩 떼어 내며 온다, 안 온다를 절박하게 가늠하던

월선이 모습이 마치 눈으로 본 듯 떠오른다.

 

 

'토지'란 무엇일까.

토지는 부동산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을 살아 있게 하는 땅이다.

살고자 꿈틀거리는 온갖 것들을 살게 해주는 너른 품이다.

 

나 죽어 갈 곳에 천국과 극락 없어도 괜찮으니 다만 살았을 때 사랑으로 위로하고 위로 받고 싶다.

어차피 사랑한 자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사랑한 자의 기억에서만 거주할 테니까.

 

이 장면을 읽다가 책을 덮은 뒤 한참을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눈시울이 젖은 조문객처럼 앉아 있었다.

 

아마 작가도 독자들이 곡진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그러하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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