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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토지> 석이 본문

합의된 공감

<토지> 석이

레니에 2018. 4. 4. 08:59



눈은 싱겁게 멎어버리고 하늘은 개기 시작했다. 

길가 삽짝 앞에 강아지 한 마리가 오돌오돌 떨면서 앉아 있었다.

석이 그 앞을 지나친 뒤 강아지는 우우 하고 짖어보다가 그것도 싱겁게 그만둔다.


우물가에는 아낙이 보리쌀을 씻고 있었다.

소매 끝을 걷어 올린 두 팔뚝이 빨갛다.

석이는 우물에 두레박을 던져서 물을 퍼올린다.

누구든 적선하라는 듯 아무렇게나 놔둔 돼지 밥통에 아낙은 보리 뜨물을 부어준다.

물지게를 진 석이는 좁은 골목을 옆걸음질쳐서 빠져나온다.



<토지 2부 2권 중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정한조의 아들 석이.


물지게 품을 팔아 하루하루 연명하는 소년은 

제 가슴에 쌓인 원한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소년은 분노를 숨긴 채 제 아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조준구의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기를 자청한다.


물지게를 지고 좁은 골목길을 옆걸음으로 빠져나오는 석이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섣부른 몸짓에 감정이 넘쳐 흘러 복수에 이르는 길을 그르치지나 않을까 조심하는 듯하다.


살아남기 위해 출구를 찾는 소년을 연민하고

아울러 그 주변을 살피는 작가의 시선이 더없이 다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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