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장면의 집합
<첨밀밀> 그래, 그런 영화가 있었지 본문
두 사람은 시작부터 달랐다.
본토발 열차가 홍콩에 도착할 때 자다 깬 남자는 허둥대지만, 여자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길을 찾았다.
두 사람은 시작부터 같았다.
아전인수의 기대를 들고 홍콩과 서로에게 발을 들여놓았다.
삶에는 언제나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현실에 순응하는 것과 꿈을 쫓는 것.
어느 경우엔 그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지만
대체로 그 둘 사이에 놓인 장벽은 높고 골은 깊다.
그들도 조폭과의 관계와 고향에 두고 온 부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아무리 우연이 겹으로 쌓여 마음을 흔들어도
꿈을 위해 홍콩에 온 여자의 선택지에 가난하고 굼뜬 본토 남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여자는 용기 있게 욕망했고 남자는 성실히 소심했다.
이요(장만옥)는 먼저 노래를 불렀고, 앞장서 걸었고, 앞서 떠났다.
대개 사람은 인심이 후한 쪽에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니까.
마침내 두 사람은 돌고 돌아 서로에게로 귀환한다.
어디서든 이방인이었던 그들은 흘러간 10년 동안 점점 더 보잘것없어졌지만
끝내 비껴가는 듯하던 인연이 우여곡절 끝에 만나 헐렁하던 마음을 채우는 데는 성공한다.
후줄근한 차림에 생기 없던 두 사람이 웃는다.
종종 낯선 세상에서 어느 날 꾸준한 그리움처럼 낯익은 너를 만난다면
어제 없던 미소를 짓겠다.
다시 봄.
누군가의 입에서도 '봄날은 간다'가 슬며시 새어 나올 것이고
이 봄은, 누구의 눈에도 아주 짧고 강렬한 한순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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